사랑으로 가꾼 꿈나무
사랑으로 가꾼 꿈나무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4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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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곽 원 이 <음성남신초병설유치원>

우리 유치원 해맑은 둥지에는 19명의 꿈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크기도 잎 모양도 제각각인 꿈나무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색과 향기를 뿜어낸다. 연령도 5살에서 7살까지 다양하고 남자가 14명, 여자 5명으로 남자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다보니 교실은 늘 큰 소리와 시끌벅적할 때가 많다. 만 3세 아기들이 5명이나 있다보니 교실에서는 정말 여러 가지 웃지못할 상황들이 일어나곤 한다.

쉬가 마렵다며 교실에서부터 바지와 속옷까지 모두 내리고 창피한 줄도 모르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이며 화장실로 향하는 재훈이, 교실의 장난감은 모두 꺼내서 놀고 난 후 정리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도망가버리는 은태, 밉다는 말은 질색을 하고 너무나 영악하고 귀여워 여우라고 하면 발음도 정확하지 않은 말투로 끝끝내 여우가 아니라 토끼라고 우기는 깜찍한 예빈이,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엄마가 보고 싶다며 갑자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새침떼기 한솔이. 그중에서도 7살 준섭이는 단연코 으뜸이다. 우리 반에서 제일 힘세고 목소리 크고 무엇이든 자기 마음대로 해야만 성이 풀리는 소위 아이들 중에서 대장이다.

처음에 준섭이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놀이할 때는 무엇이든 맘대로 하고, 필요하면 남의 장난감도 빼앗아 버리고는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야말로 막무가내였다. 월요일에 주말 그림 그리기를 할 때면 옆에 앉아 있는 동생의 종이에 마음대로 낙서하고 종이를 찢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또 어떤 날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의 이름표를 화장실 변기 속에 일부러 가져다 빠트리는 일까지 있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수 차례 다른 친구들을 속상하게 만드는 준섭이를 보면서 교사로서의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준섭이와 친해지기로 마음먹고 아침에 유치원에 오면 제일 먼저 선생님 앞에 와서 공손한 자세로 인사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놀이하다 눈이 마주칠 때면 활짝 웃으며 손바닥 뽀뽀와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놀이하고 있는 옆에 살며시 다가가 귀에 대고 "준섭아 사랑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럴 때마다 준섭이는 손사래를 치며 싫은 내색을 하기 일쑤였다. 또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준섭이와 눈을 마주보고 앉아 잘못한 점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 후 잘못한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했고잘못했을 때 사과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반복해서 지도를 하였다.

가끔씩 조금이라도 잘하는 점이 있을 때면 다른 아이들보다 몇 배의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칭찬해 주었다. 처음에는 별 성과가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콩나물을 기를 때 시루에 물을 주면 그 물이 밑으로 다 새어나가는 것 같지만 조금씩 물이 스며들면서 싹이 나고 콩나물로 자라나듯 그렇게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지금 준섭이는 아침에 오면 공손하게 인사도 잘하고 때로는 수줍은 미소도 보일 줄 알고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미안해"라고 말할 줄도 안다. 점심때면 내 옆에 앉아 일찌감치 밥을 다 먹고는 재잘재잘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천생 7살 남자 아이다. 그런 준섭이가 오늘은 "선생님, 8살 때도 유치원에 또 다니고 싶어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은 봄눈 녹듯 사라지고 마음 한 켠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사랑과 칭찬은 가장 훌륭한 특효약임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우리 아이들의 가슴속에 사랑을 심어 주고 싶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애정어린 스킨십으로 아이들의 가슴을 덥혀주고 그 온기가 고스란히 마음에 전해져 사랑의 향기를 머금은 튼튼한 나무로 성장하도록 돕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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