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와 연탄
우표와 연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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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참으로 오랜만에 우표가 붙어있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까닭 없이 쓸쓸해지기만 하는 11월도 이제 열흘을 남긴채 숨을 죽이고 겨울바람은 어김없이 메워지는데 감동할 일이 별로 없는 시절 하얀 편지봉투에 붙어 있는 우표 한 장은 마음을 청아하게 합니다. 좀처럼 편지 쓸 일이 없는 요즘 우편함에 쌓이는 우편물은 대부분 고지서 일색이고 게다가 덩그러니 찍혀있는 요금별납 도장은 씁쓸하기만 합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유치환 '행복'-

모처럼의 우표 한 장은 이런 시를 읽는 감동입니다.

그러나 우표 한 장에서 이어지는 이런 풋풋한 서정성을 오래 간직하면서 반가운 소식을 찾아보기란 도무지 쉽지 않습니다. 얼마전 서울의 마지막 연탄공장을 중심으로 연탄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우는 다큐멘터리 TV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모든 화두가 경제에 집중되고 있음에도 서민들의 어려움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그 서러운 겨울을 연탄이 얼마만큼이나 녹여줄 수 있을지 입동(立冬)을 지나 소설(小雪)을 앞둔 삭풍이 처연하기만 합니다. TV에 등장하는 연탄을 보면서 시인 안도현이 '너에게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딱 석 줄 쓴 시가 생각납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11월이 숨 가쁜데 우표 한 장에서 유치환의 '행복'으로 다시 연탄에서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로 이어지는 생각의 꼬리 끝에 울컥 서러움이 치밀어 오릅니다.

기억하실 이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저는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에 난다'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헤겔에게는 어둠이 찾아 온 뒤에 활동하는 올빼미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의 상징'이라는 화두로 시작했던 그 글의 기억이 저에게는 아직 생생한데 지금 그 '미네르바'가 위태위태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익명의 선행을 기어이 들춰내야 직성이 풀리는 그리하여 철없는 비방을 불러일으키는 세태의 하 수상함과 그를 즐기는 듯하는 매스미디어의 속성 역시 못내 꺼림칙합니다. 선행을 널리 알림으로써 이를 사회적 귀감으로 삼겠다는 언론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다만 익명을 전제로 할 만큼 충분한 진정성을 알아차릴 수 있음에도 그 진정성과는 전혀 상관없는 주장을 게재하는 저의는 무엇입니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다보니 저 역시 시쳇말로 낚인 꼴이나 진배없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순수한 선행을 왜곡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 소위 인터넷 악플에 대한 법적 제재의 핵심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런 허무맹랑함은 차라리 무시하는 편이 나은 것이 아닌지요. 살가운 이웃이 점점 사라지는 11월, 겨울이 무섭습니다. 연탄은 까맣게만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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