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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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21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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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바쁘게 출근을 준비한다. 양말을 신고 넥타이를 고른다. 그리고 겉옷을 걸치며 주머니 속을 점검한다. 자동차 열쇠, 지갑, 휴대전화 그 다음에 오늘 읽어야 할 책 아니면 어젯밤에 정리한 원고뭉치. 승강기에서는 거울을 보며 하루를 점검한다.

대개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일 터이다. 그러면서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지낼 수는 없는 것일까 자문하게 된다. 차량이 꼬리를 무는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몸에서 차만 떼어내도 좀 여유가 있을 법한데 세상사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노모가 계시는 형님댁을 갈 때에 내 차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를 이용한다면 환승해야 하는데 꽤나 불편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카드를 사용하는 경우에 한하여 30분 이내에 환승하면 무료라고 한다. 편리하구나 하면서 환승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된다.

환승은 잠시나마 나를 기대에 부풀게 한다. 전적으로 내가 원해서 갈아타는 것이지만 운전하는 기사도 내가 정한 것이 아니요, 함께 타고 갈 승객 역시 내 의지와는 무관하며, 혹시나 듣게 될 음악마저 선택권이 없다. 물론 처음에 탔던 차도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이 갖는 특성이다. 그처럼 인생도 환승할 수 있을까 쓸모없는 궁금증이겠지만 그 쓸모없는 궁금증 소설가는 말한다. 소설이 혈실보다 더욱 현실적이지 않을까

신외숙의 중편소설 '환승 인생'('창조문학', 2008년 여름호-가을호)은 제목이 주는 빈자리가 적다. 환언하면 우리가 버스를 갈아타듯이 인생 갈아타기를 주제로 할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소설의 제목을 통해서 소설 전체를 짐작하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전과는 다른 운전기사와 승객을 만나듯이 새로운 인생의 동반자를 만나거나 선택권이 없지만 친숙한 노래처럼 리듬을 타면서 새로운 삶이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읽게 된다.

이러한 독자의 기대를 충족하듯이 소설은 주인공이 기다리던 버스를 타면서 먹통이 되어버린 카드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한다. 버스카드가 정지된 것을 알고 난 후부터 주현의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고 있었다.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따라서 당황한 주현은 전철역사로 달려가고, 카드 아랫부분으로 전화를 해야 하고, 다시 은행에 가서 신고하고 환불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은행을 가보니 카드는 카드 회사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은행에서는 새로 구입을 하고 환불금은 통쟁 계좌로 입금한단다. 버스카드 하나 먹통이 되니 참으로 인생사만큼이나 복잡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40대 후반의 모습이다.

소설의 들머리는 전체를 통할(統轄)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버스카드가 먹통이 되고 새로 발급받는 절차가 복잡한 것은 곧 주현의 삶의 궤적이 간단치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불우하게 자란 동기생 홍식이와의 결혼, 짧은 행복에 이어지는 홍식의 죽음과 주현의 퇴직, 그리고 삶의 체념은 자연스런 수순인 셈이다. 그러나 삶이란 감정적으로 살 수만은 없는 가보다. 그래서 주현은 수많은 질곡의 시간을 지낸다. 또한 주현을 둘러싼 주변의 불우한 삶은 인생의 환승을 소망하는 대중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40여 년 전 주현은 부자였던 급우 해수네 집에 자주 놀러 갔으나 처지의 차이를 확인하고 열등감만 키우게 된다. 다만 해수의 오빠인 해철에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그 열등감을 넘어선다. 그러나 여러 가지 현실이 둘의 사랑을 지켜보지만 않았다. 해수네는 이민을 갔고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40여 년이 지나 배우자 사별이라는 공동의 아픔을 지니고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소설가가 만들어낸 우연이다. 따라서 주현과 해철은 쉽게 40여 년의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회복하게 된다. 두 사람은 모두 인생의 환승을 한 셈이다. 40여 년의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으나 나머지 뒷일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둔다. 독자들도 한 번쯤은 인생의 환승을 꿈꿔보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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