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1.0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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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군대에서 제대하여 귀가한 지 일 년 만에 다시 유학의 길을 떠나 멀리 있으니 너를 가까이에 두고 본 게 꿈만 같구나. 가끔 전화를 통하여 잘 지낸다는 소식은 듣고 있지만 곁에 두고 보는 것만큼 마음이 편할 리 있겠느냐. 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할 것으로 믿으니 그 믿음으로 안심을 삼을 수밖에 길이 없구나.

여기는 가을이 깊었다. 눈요기가 풍성하던 단풍도 한때인지라 떨어져 눕고, 거리의 구석에서 서성거리는 겨울로 인하여 나그네는 코트의 깃을 세운다. 푸석거리는 손등처럼 마음의 감정마저 메말라 계절이 바뀌어도 소년기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지만 내면을 돌이켜 생각해보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는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또한 몸속의 수액을 낮추어 겨울나기를 한다는 나무의 지혜를 본받아 겸손을 배우기도 한다. 열정의 젊은 시절에는 감성이 넘쳐났지만 나이 들고부터는 성찰의 시간이 많아지니 이를 따르는 것이 순리이리라.

네가 머무는 그곳에도 4계절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곳보다는 더운 곳이라니 4계절이 뚜렷하지는 않을 듯하구나. 물론 그렇더라도 객수(客愁)를 느끼는 것이야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러나 쓸쓸함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어찌 삶에 환희만 있고 그늘이 없을 것이며, 그늘을 피해갈 수만 있겠느냐. 그러니 그늘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도 아니다/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그늘에 앉아/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고도 하고 쏘아놓은 화살과 같다고도 한다. 이는 세월이 빠르게 흐른다는 말이지. 그 까닭은 자신이 지나온 길은 잘 보이지 않고, 남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은 크기 때문일 터이다. 그러나 그 빠르다는 세월이 개인의 어떤 사정에 이르면 느리기 짝이 없는 법. 너를 기다리는 나의 마음은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로구나. 일생을 살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 고통이라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과 헤어져 있는 것 역시 고통일지니 하루인들 너를 먼 곳으로 보내고 마음이 편하기야 했겠느냐.

그러나 삶이란 기다림의 연속일지니 어찌 조급하게 굴겠느냐. 그러니 네가 무사히 돌아와 옛 이야기할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지혜롭게 너를 기다리는 일인 줄 안다. 물론 힘이 들지만 기다리는 방법을 너로 인하여 배워가니 그 또한 고마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은 너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나를 비롯하여 네가 아는 사람들을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네가 여기에 있을 때의 언행으로 보아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기다림을 배우려 하지 않고 조바심을 친다면 시간은 점점 길어질 것이요, 네 마음은 새까맣게 탈 것이며, 먼 유학의 길을 떠날 때의 초심을 잃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또한 네 나이가 세상의 이치는 어느 정도 깨달을 만하니 이제는 어른스럽게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네 몸을 소중히 하여 침착하게 잘 마무리하고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만나길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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