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이유있는 고민
보수의 이유있는 고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10.2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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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한 덕 현 편집국장

사람 둘만 모여도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부터 나온다. 경제위기가 세계적인 추세라고는 하지만 서민들의 주머니 걱정은 더욱 현실적이다. 이발소의 매출이 급격히 줄어들고, 동네 세탁소 역시 손님이 뜸해져 한걱정이다. 사람들이 한달에 한번씩이던 이발을 두달 주기로 바꾸는가 하면, 과거같으면 요즘같은 환절기에 철지난 옷을 들고 세탁소를 찾았지만 요즘엔 안 그렇다는 것이다. 여름에 입던 옷을 직접 빨아 보관하거나 아예 그대로 방치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란다. 못 가진 사람들의 생존술은 이처럼 절박하다.

지금의 경제난은 어쩔 수 없이 이명박 정부의 향후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아무리 정치를 잘해도 국민들이 배고프면 의미가 없다.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경우 그들의 말대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으며 요순시대를 읊조리겠지만 그 반대라면 집권세력의 시련은 불가피하다.

최근 눈에 띄는 현상이 하나 있다. 보수의 분화다. 그동안 억눌리고 쫓기던 진보세력이 촛불시위에 대한 법원의 유연한 판결을 계기로 재결집을 시도하는 것 못지 않게 보수쪽의 자아비판과 자기성찰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오로지 노무현 타파에 일렬종대로 섰던 범보수계가 점차 단체 및 계파별 차별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차제에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자는 의기까지 나온다.

이는 종부세 개편안에 반기를 들고 나온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운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이명박' 아이콘에 대해 막무가내식 우호적 기사를 남발하던 조중동 역시 최근엔 현 정부에 대한 톡톡 튀는(?) 비판기사를 종종 선보인다. 보수의 조바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궤적엔 큰 흐름이 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로 집권했지만 곧바로 촛불에 그을리며 위기를 맞았다가 다시 반전의 기치를 높이 쳐드는가 싶더니 이번엔 미국발 금융위기를 만나 주춤해진 상태다. 향후 운신은 어차피 현재의 경제난 혹은 위기가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달렸다. 같은 경제문제이지만 취임과 동시에 YS의 거덜난 국가를 넘겨 받아 '잘하면 좋고 못해도 본전'이었던 DJ와는 달리 MB는 국민의 살림이 어렵게 되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지난 선거때 워낙 '대안'의 이미지가 부각된데다 본인 스스로 경제에 대한 기대감을 지나치게 부추겼기 때문이다.

현 정권 출범 이후 바람 잘날이 없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절대적 지지층인 보수쪽에 궁극적인 책임이 있다. 10년만의 정권쟁취를 즐기겠다는 마음만 급했지 정작 이를 길들이고 지키겠다는 노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 단적인 예가 이념 논쟁에서 드러난다. 보수 스스로가 이념갈등만 촉발시켰지 막상 그 이념의 무장엔 형편없었다. 최근에 있은 방송토론회의 보혁논쟁도 대개 진보의 선명성만을 더 부각시켰다. 보수의 대표주자로 나온 패널부터가 이념의 무장에 완벽하지 못했다. 머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론이나 내공이 뒤쳐지는 인사들이 공중파에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치기로 보인다. 내 말이 틀리다면 앞으로 이런 토론을 자세히 지켜보기 바란다.

지금까지 보수가 실패한 이유는 또 있다. 굳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명박 정권의 보수세력은 신념의 전파보다는 상대에 대한 응징과 한풀이에만 너무 집착했다. 불법집회에 대한 집단소송제를 꾀하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를 처벌하려는 발상은 치졸의 극치를 보였다. 시민운동은 그런 식으로 재단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이명박 리더십이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일관성과 품위 결여, 포용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 때문이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곧 자신감의 결여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

지난 주말 지리산에 다녀왔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대개 같다. 그 장쾌한 산세를 보고 싶어서다. 어렵게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육중한 산들의 능선은 마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인내하는 것같다. 그 '넓음' 때문에 지리산에 빠져드는 것이다. 10월이 가기 전에 꼭 한번 찾아 보길 권한다. 지금 단풍도 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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