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문백전선 이상있다
309.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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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24>
글 리징 이 상 훈

"우린 왕비님을 산소 입구까지만 경호해 드리면 된다"

장산은 곧 부하들을 불러 모아, 이번 왕비님의 행차는 남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아주 은밀하게 행해져야한다고 설명을 한 뒤 모두 사복(私服)으로 갈아입고 대기하라 일렀다. 그러고 나서 장산은 조금 들뜬 기분으로 왕비의 처소 안에 다시 들어갔는데 저쪽에서 보통 아낙네의 수수한 옷차림을 한 채 몇 명의 시녀들과 함께 걸어오고 있는 수신 왕비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런데 키가 큰 수신 왕비가 몹시 부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기적거리고 있는 품새가 장산의 눈에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였다.

'가만있자! 그, 그럼 혹시.'

뭔가 섬뜩함을 느낀 장산이 재빨리 손짓하여 시녀들 중 하나를 가까이 오도록 불렀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녀의 말에 의하면 조금 전 수신 왕비께서는 잡귀들이 감히 스며들지 못하게 한답시고 소금물로 온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그 아래 부드러운 살 틈새 안에 숟가락으로 소금을 퍼서 어린아이 죽 떠먹이듯이 잔뜩 들이 밀어 넣었다는 것이다.

"어허! 그런 것은 오로지 산소 앞에서나 효험을 볼 뿐인데. 왕비님께 얼른 말씀드리게나. 조그만 소금 항아리를 가지고 산소 앞에 가서 그 일을 행하셔도 늦지 않다고 말일세."

시녀가 돌아가 장산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하자 수신 왕비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수신 왕비는 부리나케 근처에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가 시녀들에게 더운 물 한 통을 갖고 오라 일렀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수신 왕비는 가져온 그 물통 위에 말 타듯이 올라타고 앉아 온통 소금 범벅이 되어버린 자기 아래 어느 곳을 더운 물로 말끔히 헹구어 내려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조금 전과는 영 딴 판으로 수신 왕비가 몹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안면에 띠우면서 다시 나왔고 어느 틈에 준비를 했는지 어느 시녀의 두 손에는 소금이 가득 담긴 것으로 보이는 조그만 항아리 한 개가 들려있었다.

"왕비님! 그런데 제상(祭床)에 올릴 음식은"

장산이 주위를 둘러보며 수신 왕비에게 물었다.

"속창 아저씨가 순대 요리를 직접 만들어서 산소 앞으로 갖고 오기로 했어요."

수신 왕비가 자기 딴엔 자랑하듯이 말했다.

"아, 그건 안 됩니다. 이런 성스러운 제사에 절대로 객꾼이 끼어서는 안 되어요."

장산이 몹시 당혹스러워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 왜요 속창 아저씨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 어머님을 잘 아시는 분인데 그리고 속창 아저씨는 저보다 순대 요리를 훨씬 더 맛있게 잘 만드시잖아요"

"안됩니다. 본디 제사음식이란 그걸 만드는 자손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있어야만 하는 법, 그 맛이 있고 없고는 완전한 별개이옵니다. 그러니 왕비님의 정성스러운 손맛이 깃든 음식이라야 하지요."

"어머머!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 하네요. 그럼 제가 직접 만든 순대를 갖고 가겠어요."

수신 왕비는 시녀에게 명령하여 오늘 아침 자기가 직접 만들어 봤던 순대 요리를 찬합 안에 모두 담도록 시켰다. 이제 떠날 준비가 어지간히 다 되자 장산은 사복(私服) 차림을 한 호위무사들을 모두 다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여느 때와 달리 이번엔 왕비님께서 홀로 제주(祭主)가 되셔서 부모님을 위한 제(祭)를 올리실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산소로 들어가는 입구까지만 철저하게 경호해드리면 된다. 왕비님께서 제를 올리시는 동안 우리들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산에 오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지켜야할 것이며, 설혹 무슨 소리가 산 위에서 크게 들려온다 할지라도 내 명령 없이 함부로 뛰어올라가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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