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 문백전선 이상있다
306.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23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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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21>
글 리징 이 상 훈

"왕비님께서 남몰래 속상해하는 일이 있으십니까?"

사실 키만 컸다 뿐이지 그 소견머리로 말하자면 철부지 어린애나 다름이 없는 이런 여자를 산전수전 다 겪은 장산이 어르고 뺨치듯이 다룬다는 것은 마치 고양이가 공을 가지고 노는 거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참 별일이네요. 그런 쥐새끼 같은 부부가 죽어버린 게 뭔 대수라고. 그 일 때문에 제가 남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실제 속으로는 제가 뭐 눈썹 하나 까딱했는지 아세요 지극히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제가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는 줄로 아시고 두 분께서 그렇게 통곡을 하셨다니."

수신 왕비는 몹시 답답한 듯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크게 몰아내 쉬었다.

"그래도 부모님의 마음은 그게 아니옵니다. 가, 가만있자. 혹시 왕비님께서 요즘 남몰래 속상해 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어머! 우리 아들(성남)이 요즘 너무 잘 먹어 살이 자꾸 오르는 걸 보고 내가 너무 속이 상해서 조금 안 좋게 떠든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걸 들으셨나"

"아마 그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래 부모님께서는 살아계시거나 돌아가시거나 늘 자기 자식에 대한 걱정을 멈추지 않는다니까요."

"어머!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아이, 이걸 어째! 제가 부모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니."

수신 왕비는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지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사실 그녀는 자기 아들 성남 왕자에 대해 큰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떻게 된 아이가 위로 클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만 옆으로 퍼지기만 하니 그 꼴이 살찐 돼지새끼처럼 우습기도 하려니와 이로 말미암아 수신 왕비는 남편인 아우내왕에게 도무지 체면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자식이라 하면 아비를 어느 정도까지는 닮아줘야만 할 터인데 키가 훌쩍 크고 말상(馬相)으로 생겨먹은 아우내 왕과는 영 딴판이니 그를 낳은 수신왕비로서는 자연 속이 타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씨(염치) 자체가 워낙 잘은 것이라지만 그래도 내 몸 속에서 자라고 내 몸 밖으로 나왔으니 하다못해 나를 닮아 키라도 좀 커야할 것 아니야. 그런데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더 진짜 지 애비(염치)만 닮아가니 이를 어째.'

이렇게 남모르게 애간장을 태우고 있던 수신 왕비에게 염치 내외가 도망을 치다가 죽고 말았다는 소식은 오랜 가뭄 끝에 맞이한 달콤한 비처럼 반갑고 유쾌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수신 왕비 이외에 성남 왕자의 출생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졌지만 그러나 여전히 고민거리로 남아있는 것은 아들 성남 왕자의 비만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장산의 꿈 얘기인즉 이러한 고민을 돌아가신 부모님께서도 공감(共感)하시며 슬피 울고 계시다하니.

"장산! 대체 이를 어찌하면 좋지요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살아있는 자식을 걱정하시는데 자식 된 도리로서 내가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수신 왕비가 몹시 당혹스런 표정을 지으며 장산에게 물었다.

"제 생각건대 왕비님께서는 지금 당장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으신 다음, 좋은 술과 맛난 음식을 준비해가지고 부모님이 계신 곳을 찾아가 정성껏 제(祭)를 올려드리는 것이 좋을 듯 하옵니다. 살아있는 자가 고인(故人)의 마음을 달래드릴 수 있는 방법이라곤 이것 말고 뭐가 있겠사옵니까"

"맞아요. 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듯 싶네요. 그럼 지금 당장 부모님 산소를 찾아가 정성을 다하여 제를 올려드리겠어요. 그런데, 좋은 술과 맛난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온데, 어떻게 해야만 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다듬는 것이 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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