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문백전선 이상있다
304.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9.19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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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619>
글 리징 이 상 훈

"왕비님, 제가 어젯밤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본디 사채업자란 인정사정 피도 눈물도 없이 오로지 돈에만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자들! 그러니 이런 자들에게 인간미를 기대하려느니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깨끗한 물을 퍼내려는 일이 훨씬 더 쉬울 것이다.

장산은 정중히 가부좌를 튼 자세로 자기 방 안에 틀어박혀 앉아 거의 날밤을 새우다시피 해가며 이것저것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날이 밝기가 무섭게 대정은 장산의 집을 또 찾아왔다. 대정은 여느 때와는 달리 아주 말쑥한 정장차림에 사내대장부 같은 의젓한 기품마저 갖추고 있었다.

"어떻게. 밤새도록 잘 좀 생각해 보았나"

대정은 장산 바로 코앞에다 금화 몇 개가 들어 있음직한 조그만 가죽주머니를 가볍게 흔들어 보이며 점잖게 물었다.

"으음. 자네 오늘 점심 먹을 때쯤 수신 왕비님의 부모님 산소 근처에 가마꾼 복장을 하고서 기다리고 있게나."

장산이 뭔가 결심을 단단히 굳힌 듯 자못 근엄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뭐 뭐라고 그럼, 자네가 수신 왕비님을 그곳으로 데려온다는 말인가"

"그렇다네. 내가 무슨 수를 써서든지 왕비님 혼자 산소 앞에 머물게 할 터이니 그 다음은 자네가 알아서 잘 해보게나."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고맙네! 고마워! 장산! 자네야 말로 진정한 나의 친구일세. 내 자네의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기필코 이번 일을 아주 멋들어지게 성공하고야 말겠네! 고마우이. 정말로 고마우이. 힘껏 노력해 보겠어!"

대정은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며 장산의 손을 덥석 잡아 쥐었다. 어느 틈엔지 잘생긴 대정의 두 눈에는 눈물이 촉촉이 맺혀있었다.

"그건 그렇고. 자네, 나와 약속했던 금화는 주는 거지"

장산은 체면불구하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실 이렇게 갈 데까지 다 가게 된 마당에 체면이고 뭐고가 어디 있을까!

"하하. 그 점에 대해선 염려하지 말게. 자, 기분도 그렇고 하니 내가 우선 이걸 먼저 주겠네. 나머지 열다섯 개는 일이 완전히 성사되어 끝나는 즉시 기분 좋게 내가 건네줄 거야."

대정은 이렇게 말하며 손에 꼭 쥐고 있던 조그만 가죽주머니를 장산에게 냉큼 건네주었다. 장산이 서둘러 그 가죽주머니를 펼쳐보니 과연 그 안에는 번쩍거리는 금화 다섯개가 들어있었다. 장산은 그 가죽주머니를 얼른 자기 소매춤 안으로 집어넣고는 대정을 자기 앞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오게 하여 뭔가를 한참 속닥거리며 일러주었다. 대정은 장산에게서 얘기를 듣는 도중 내내 기쁨에 들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눈치였다.

대정과 헤어져 여느 때보다 훨씬 일찍 궁 안으로 들어간 장산은 수신 왕비를 만나 뵙기를 청하였다. 염치가 몰래 달아나다가 잡혀 죽은 사건() 이후로 너무 신경을 쓰고 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잠시 후에 나타난 수신왕비의 모습은 여느 때와는 달리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장산은 수신왕비를 향해 정중히 문안 인사를 올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비님! 실은 제가 어젯밤 아주 해괴하고도 이상한 꿈을 꾸었사옵니다."

"어머! 해괴하고도 이상한 꿈이라니 대체 무슨 꿈이기에"

수신 왕비는 장산의 말에 놀란 듯 큼지막한 두 눈을 더욱 크게 뜨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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