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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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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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손님이 많지 않았다.

8·15 광복 후에 부모님께서 월남하신 까닭에 일가친척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이웃집에 삼촌이라거나 고모 혹은 이모라는 분들이 손님으로 오시면 꽤나 부러웠다. 우리 집에서는 가끔 오시는 백부모님이 유일한 손님이었으며, 덕분에 그때에는 보기도 힘든 쌀밥에 생선 반찬까지 먹을 수 있었다. 어찌 손님을 반기지 않을 것이며, 오시는 날을 기다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번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손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 청계광장을 비롯한 도심 곳곳에서 부시 방한에 반대하는 집회와 동시에 환영하는 집회가 열렸다.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한 한미우호문화제와 광우병 국민대책회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촛불집회도 동시에 열리면서, 양측 간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예상됐다. 경찰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경호와 서울 시내 경비를 위해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 시위 진압과 경호·경비 업무에 많은 인력을 배치해 이에 대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손님맞이 치고는 꽤 요란하다. 촛불은 길을 밝혀 편안한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나를 태워서 세상을 밝히겠다는 뜻이며, 한미 우호 문화제 역시 한미간에 우호를 다지는 문화제라기보다는 촛불 집회에 맞서는 것으로 보인다.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는 것이며, 초목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으나 바람이 움직이면 소리를 내게 마련이다. 물이 튀어오르는 것은 바위 같은 곳에 부딪혔기 때문이며, 물이 세차게 흐르는 것은 한곳의 물길을 막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말하는 이치도 이와 같으니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소란스러운 손님맞이는 이런 연장선에서 생각할 수 있다.

소설가 김종광은 '처음의 아이들'('현대문학', 2008년 8월호)에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촛불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촛불잔치'라는 대중가요가 히트하던 무렵에 스무 명 남짓한 고등학생들이 경찰서 앞에서 촛불을 밝혀 들었다. 전교조 문제로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던 선생님을 위한 학생들의 촛불시위였다.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지금 '영원한 문제 스승'이라 불리는 그 선생님은 그 당시의 제자와 함께 주말마다 여전하게 촛불을 든다.

21년의 흐름 속에 고등학생들이었던 제자들은 차를 파는 소식통, 섬에 사는 물개, 산 밑에서 염소 키우는 책벌레, 동사무소 공무원 하는 싸움닭, 노래장사하는 민주, 술장사하는 조폭, 저수지 관리하는 단무지, 보험을 파는 배둘레햄으로 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촛불을 들어야 하는 세상이다. 서울에 사는 제자는 열흘째 광화문에서 살고 있다면서 '우린 자부심을 가져도 돼. 우리가 치켜들었던 촛불이 밀알이 되었던 거야. 이십여 년 만에 저토록 장대하고 광활한 촛불로 태어난 것이지'라며 흥분한다. 서술자의 관점은 21년이 무색하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며 변하지 않은 것이 존경스러운 동시에 한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원한 문제 스승이나 중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어야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는 것이며 그런 사정이 변하지 않았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손에 들린 촛불을 꺼주고, 국민들이 나라의 성대함을 노래하게 할 수 있다. 반면에 국민들의 마음을 근심스럽게 하여 그 불행을 지속적으로 소리내게 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결정은 칼자루를 쥔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촛불 든 사람들을 어찌 잡아서 가두며, 한미 우호 문화제 펼치는 사람들을 한심하다고 탓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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