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7. 문백전선 이상있다
277.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07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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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92>
글 리징 이 상 훈

"국경 근처에 거의 다 왔으니 이제 안심이 되는군"

'이크!'

염치는 아내와 눈이 마주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온 몸이 결박당하고 입마저 막혀있으니 지금 그녀가 자기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눈 하나 뿐! 그녀는 지금 남편 염치에게 뭔가 하소연을 하려는 듯 그윽한 눈빛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었다.

'어휴! 기왕에 입을 막을 거라면 아예 눈까지도 좀 가려놓을 것이지.'

염치는 마냥 떨리는 가슴을 달래가면서 재빨리 웃옷을 벗어 아내의 두 눈을 살짝 덮어버렸다. 염치 아내는 혼신의 힘을 다하여 발버둥을 쳐보고자 온몸을 꿈틀거렸지만 네 팔다리가 꼼짝 못하도록 묶여있으니 무용지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염치는 아내를 실은 마차 짐칸 위에 여유 공간이 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혹시 그곳을 채울 만한 것은 없을까하여 주위를 둘러보다가 주방 가까운 쪽에 세워놓은 짐짝 몇 개에 시선을 멈췄다. 염치가 얼른 다가가 그 짐짝들의 내용물을 살짝 들춰보니 하나는 참나무 숯이 또 다른 하나는 왕겨가 가득 들어 차있었다.

'아니, 이 여편네가 도대체 정신이 있나 없나 죽느냐 사느냐 하는 일로 언제 도망쳐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겨우 이따위 불쏘시개 감들을 가져갈 귀중품이랍시고 싸놓다니.'

염치는 그냥 가버리려다가 그래도 뭔가 진한 아쉬움이 들기에 가까운 곳에 있는 나머지 다른 짐짝들을 조금씩 들춰 보았다. 다행히 그중 어느 짐짝 속에는 은수저며 술잔, 찻잔, 놋그릇, 사발 등등 주방에서 사용하는 제법 값비싼 용기들이 가득 담겨있었다.

'옳지! 이거다! 이것만 가져가서 팔더라도 돈푼 정도는 좀 건지겠어.'

염치는 하인들에게 명령하여 주방 용기들로 가득 찬 짐짝을 마차 위에 싣도록 했다. 이제 어지간히 준비를 마치고나자 염치는 마차 위에 냉큼 올라가 말채찍을 집어 들었다.

"주인님! 이제 저희들은 어찌하옵니까"

하인 두서너 명이 급히 다가와 염치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몹시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치는 수신이가 궁에 들어가 아우내 왕의 아들 성남을 낳고 부터 자기 집 하인들을 믿을 만한 자들로 서서히 갈아치운 바 있었다. 그 결과 이들은 병천국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팔려온 노비들이거나 죄를 짓고 도망쳐서 병천국 안으로 몰래 들어온 자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어디 가서 함부로 비밀을 누설시킬 리 없었다. 염치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난 다음 천천히 입을 열어 그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제부터 자유인이야! 아무데나 가서 살아도 된다네. 다만 내일 아침까지는 표시나지 않도록 얌전히 있어 주게나. 저 짐짝들은 자네들끼리 알아서 나눠 갖도록 하게나."

염치는 이렇게 말을 마치고는 급히 채찍을 휘둘러 마차를 몰고나갔다. 하인들은 염치가 모는 마차에서 풍겨지는 뽀얀 흙먼지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랴! 이랴!"

염치는 정신없이 채찍을 마구 휘둘러댔다. 마차를 끄는 두 마리의 말들은 주인(염치)에게 적극 호응이라도 해주려는 듯 평소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힘차게 달려 나갔다.

'휴우! 이제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국경 근처에 바짝 다가섰으니.'

정신없이 말을 몰던 염치는 이제야 비로소 안심이 조금 되는지 이마 위에 촉촉이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쓱쓱 닦으며 천천히 속력을 줄여나갔다.

이때 마차 뒤 짐칸 속에서 요란하게 들썩거리는 소리가 염치의 두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으음. 마누라가 너무 고통스러운 모양이로군! 허기야 온몸이 꽁꽁 묶인데다가 입이 막히고 눈까지 가렸으니 오죽 답답하고 힘이 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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