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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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25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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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화의 문학칼럼
한 채 화 <문학평론가>

삼국유사 권2 경문대왕조를 보면"왕위에 오르자 왕의 귀가 갑자기 길어져서 당나귀의 귀와 같았다. 왕후와 궁인들은 다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관을 만드는 사람) 한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 복두장은 그런 사실을 함부로 말할 수 없어 평생을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말하지 않고 죽을 수 없어 도림사의 대나무 숲 사람이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괴와 같다'고 외쳤다. 그 후에 바람이 불면 댓소리도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괴와 같다'고 하였다. 왕은 이를 미워하여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대신에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우리 임금님의 귀는 길다'라고 하였다."

요즘 동화로 소개되고 있는 이 글은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속에 담아두기 어렵다'는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남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며 당부하고 비밀을 털어놓았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로 울근불근하기도 한다. 여하튼 경문대왕의 이야기는 표현의 본능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표현의 방법은 다양해서 동작이거나 그림 또는 언어일 수 있다.

그 가운데 언어적 표현에 관해서 생각해 보자.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표현한다고 해도 그 언어가 상대방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지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어느 시골에 사는 할머니께서는 욕을 꼭 해야 할 때에 '에이 잘 될 사람'이라고 한단다. 듣는 사람 기분 좋고 말하는 사람 즐거운 욕이 아닌가. 수필가 김영미는 첫 수필집 '만드는 중'(수필과 비평사, 2007년)에서 '재치와 지혜의 언어 처방'이라는 제목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접근한다. '약사가 처방전을 보고 약을 짓듯이, 적절한 처방전 하나쯤 써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재치도 조금 넣고 지혜도 적절히 섞어서'라며 눌변에서 벗어나고자 소망한다.

아니 어쩌면 그만큼은 아니어도 그저 내 생각이나 감정을 잘 전달하기만 해도 좋을 듯하다. 가부장적인 그림자를 버리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그만큼도 어려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학습한 덕에 오늘날의 아버지들은 자기 표현에 인색하다. 그래서 부부간에도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로 인하여 결국에는 싸움까지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영미의 수필 '오해'는 이러한 오늘의 자화상을 실감나게 전달한다. 자신을 밝히지 않고 '선생님 계시면 좀 바꿔 주시겠어요'라는 전화기의 음성이 화근이다. 요즘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남용되어 딱히 교사가 아니라도 들을 수 있는 호칭인데다 자신을 밝히지 않으니 화자로서야 오해할 소지가 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있으나 그 남편은 입이 무거워야 하는 세대이고 보니 '제자인데 진로에 관해서 상담하러 왔었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결국은 말하지 못한 내용을 말하면서 오해가 풀리게 된다. 말로 인한 오해는 말로 풀어야 하는 이치인가.

'무거운 여행 가방' 역시 말하기의 소중함을 일러주는 수필이라고 할 수 있다. 들머리에 크레졸 냄새 가득한 건물에서 혼자 마음 졸이고 계실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니 처서 지나고 느끼는 한기마저 사치하다고 말한다. 독자들은 독서과정 전에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갖게 되었다. 수필 속의 인물들은 전혀 눈치 챌 수 없을 정도로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 부부싸움을 하고 훌쩍 집을 나온 여자로 보이는 화자의 차림새는 오해의 소지가 있으나 S병원 가자는 화자의 말은 멋진 반전인 셈이다.

더위와 장마가 번갈아 괴롭히는 여름. 주변 사람들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말씀 한 마디쯤 준비했다가 먼저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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