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속리천의 이름으로
<7> 속리천의 이름으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1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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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래강의 숨결
◈ 속리천과 정이품송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산자락이 품을 연 곳으로 속리천은 흐르고

남한강 정반대 방향인 남쪽 향해 물머리 돌려
봄부터 계속된 가뭄 영향… 하천 바닥 드러내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이상덕기자>


산경표의 원리에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란 말이 있다. 산은 스스로 물을 나눈다는 뜻이니 산은 물을 건너지 못하고 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뜻과도 같다.

또 산경표에서는 두 능선 사이에 반드시 계곡이 있고 두 계곡 사이에는 반드시 능선이 있다고 본다. 또한 물길은 능선보다 낮은 곳에서 시작해 서로 끊기지 않고 이어져 흐르니 산 없이 시작되는 강이 없고 강을 품지 않은 산이 없어 결국 산과 강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골짜기 저 골짜기 흘러온 물줄기가 모여 강을 이룬 뒤 바다로 흘러가듯 이 산 저 산줄기가 모여 정간과 대간으로 흘러들고 마침내 백두산으로 향하니 이 모든 것이 한반도의 산과 강을 이룬다는 것이다.

옛 선조들의 기막힌 논리를 생각하며 눈앞에 펼쳐진 속리산 자락을 보니 옛말이 틀림없다.

속세를 잠시 떠났던 속리산 자락이 넉넉한 품을 이제 막 열기 시작하는 곳으로 속리천(달래강 최상류) 물머리가 삐죽이 내밀고 그 바로 옆으로 '국민소나무' 정이품송이 600년 전설의 모습으로 우뚝 서있다.

숱하게 속리산을 드나들었어도 처음 보는 낯선 풍경이다. 물길에 서서 물과 산의 개념으로 바라보니 더욱더 새롭다. 본류(남한강)랑 만나는 곳이 북쪽이니 좀더 빠른 그쪽을 향해 물길을 틔울 법도 한데 정반대 방향인 남쪽을 향해 점잖게 머리를 틀고 있으니 이 또한 속리산의 매력이자 달래강의 멋이 아닌가 싶다.

천변에 자란 달뿌리풀이 한 길 가량 자라있다. 사내리 집단지구시설에서 처음으로 '인간냄새'를 맡으면서 BOD를 품었다고는 하나 물빛이 아직은 꽤나 맑은 표정이다.

물가엔 검은 듯 푸른 모습의 물잠자리 떼가 산란기를 맞아 사랑을 나누느라 정신없이 오가고 둑방에는 앙증맞은 엉겅퀴가 망울을 터트린 채 바람에 하늘거린다. 인근 도로로 관광객이 수없이 드나들며 도시내음을 전해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전형적인 산골 풍경이다.

◈ 속리천과 한남금북정맥의 멋진 만남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군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를 지나니 잠시 뒤 백석2교가 쉬어가라고 객을 부른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다시 물길을 타고 상판교를 지나 중판리 쪽을 향하니 말티고개 쪽 골짜기서 내려오는 실개천과 만난다.

말티고개 정상은 익히 알려진 대로 천왕봉서 시작한 한남금북정맥의 마루금이다. 고개 너머는 금강수계요 속리산 쪽은 속리천(달래강·남한강) 수계다.

이 지점부터 한동안은 왼쪽으로 한남금북정맥 능선을 두고 흐른다. 따라서 인근 산자락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은 그대로 속리천의 몸이 된다. 하천이 한바탕 휘도는 곳으로 둑방길을 따라 들어가니 중판리 점말교가 나타난다.

다리위에 서서 물이 흘러드는 위쪽을 바라보니 물길이 가냘프다.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하천물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점말교 바로 아래에 최근 '무전원자동수문'이 세워져 물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훨씬 많아졌지만 이곳 역시 텅 비어 있다.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이 자동수문은 보은군청 이호천담당(경제사업단 특허개발담당)이 직접 개발한 것으로 수질과 수량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최신형 수문이다.

보은군청은 앞으로 이 자동수문을 속리천 곳곳에 더 설치해 연중 맑은 물이 흐르도록 한다는 방침이어서 그 효과가 기대된다.

중판리 자동수문 아래에는 30년전(1979년) 건설된 '희망의 다리'가 고목처럼 누워있다. 인근에 속리터널이 뚫리면서 교통량이 많아지자 바로 아래에 중판교가 신설돼 다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런 탓인지 다리 입구에 새겨진 희망의 다리란 이름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인다.

보은군과 대한석유공사가 이 다리를 건설할 당시만 해도 이 지역 주민들에게 '밖의 세계로 통하는 희망'을 주기 위해 야심찬 이름을 붙였으련만 세월이 흐르면서 퇴물로 전락한 채 피서객들의 주차장과 그늘막 역할을 할 뿐이다. 속리천도 세월처럼 그렇게 흘렀으리라.

뒤에서 밀려오면 밀려오는 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채지 않고 미련없이 낮은 곳만을 향해 줄달음 쳤으리라.

잠시 세월무상에 젖었다 발길을 돌리려니 새로 들어선 중판교 초입에 낯익은 돌탑이 금줄을 두르고 서있다. 동네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었단다. 자연을 아는 순수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물길을 따라내려가다 속리산면의 하수처리상황은 어떨까 궁금해 하천옆(중판리)에 세워진 속리하수처리장을 잠깐 들렀다.

보은군이 지난 2003년부터 한국수자원공사에 위탁해 관리운영해 오고 있는 이 하수처리장은 하루 처리용량 4천톤 규모로 인근의 상판·중판·사내·갈목리 일원 하수를 총13km의 차집관거를 통해 걸러내고 있다. 방류구를 살펴보니 비교적 맑은 물이 속리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다시 도로로 나와 속리터널 앞을 거쳐 하류로 향하니 오른쪽으로 문화마을(중판2리)이 보일 쯤 하판교가 나타난다. 물길은 계속해서 왼편에 한남금북 마루금을 끼고 도로와 평행으로 달린다.

'샨띠와남'이란 독특한 이름의 요가수련원을 지나니 북암리와 마주친다. 마을 앞 세강교 아래엔 수령 3백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 역사를 대변하듯 마을간판처럼 서있고 왼쪽 수백m 위쪽으로 하천변 바위 절벽과 조화롭게 자란 소나무가 고풍스런 자태로 객을 반긴다.

37번 국도를 따라 산모퉁이를 한바퀴 휘돌고나니 백현리 마을이다.

◈ 무전원자동수문 봄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현재 속리천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중판리 자동수문으로 올들어 한 차례, 그것도 개나리꽃 필 무렵에 단 한번 물이 넘치고 말았으니 가뭄정도가 어떤지 상상이 가리라. 물이 넘칠 때의 모습(사진 위)과 현재 모습.

백현교로 들어서자 다리 아래 개울가 모습이 지금까지 보여온 자연하천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게 어색해 보인다. 최근에 마친 하상정비 사업으로 둑방엔 철망이 깔리고 하천바닥은 편평하게 다듬어져 '죽은 느낌'을 주고 있다.

또 한바탕 휘도는 산모퉁이 중간에 속리산면과 산외면 경계가 있고 이어 나타나는 백석2교가 잠시 쉬어가란다.

다리 건너 왼쪽 빈터로 들어서자 한폭의 동양화가 수면위에 떠있다.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이 인근 농경지와 어울어져 물위에 비친 게 여간 멋진 게 아니다.

지는 석양이 아쉬워 발길을 돌리니 백석1교가 지난 겨울의 모습을 떠올린다. 찬 바람이 불던 늦겨울 예비탐사차 이곳을 찾았을 때와 물빛이 확연히 다른 게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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