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충남 천안시 광덕사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
6. 충남 천안시 광덕사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6.13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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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천연기념물 그 천혜의 비상

400여년 佛心 품은 '광덕사 수호木'

천안의 사찰 광덕사 보화루 앞에 심어져 있는 천연기념물 광덕사 호두나무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심어진 호두나무로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갈래로 갈라진 굵은 줄기는 수피에 깊은 골을 드러내며 하늘을 향하고 있으며, 높이 약 20로 우리나라 호두나무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시대 유청신, 원나라서 묘목·씨앗 들여와

광덕사 보화루 누각 앞… 위풍당당한 자태 자랑


천연기념물 광덕사 호두나무가 자라는 곳은 독특하게도 사찰이다.

천안 광덕사 대웅전으로 들어서기 전 보화루 누각 앞 계단에서 만날 수 있는 호두나무는 우람한 모습으로 하늘로 치솟듯 서 있어 마치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 사천왕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는 천년 고찰 광덕사와 함께 우리나라 호두나무의 역사를 시작한 내력에서 풍기는 위엄같다고나 할까.

수령이 400년으로 추정되는 광덕사 호두나무는 오랜 시간을 품은 탓에 깃든 사연도 많다.

호두나무가 자라는 광덕사는 신라 흥덕왕 7년(832) 진산 스님이 세운 사찰로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가장 큰 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몇차례 중창으로 새로지어졌다.

천년 고찰 광덕사로 호두나무가 옮겨온 것은 1290년 원나라 사신으로 갔던 유청신에 의해서다.

그는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호두나무 묘목과 씨앗을 가져오는데 씨앗은 고향인 천안 광덕면 매향리에 심고 묘목은 광덕사에 심으면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심어진다.

이후 호두나무는 전국 곳곳에 심어지게 되는데 유청신이 심은 호두나무가 우리나라 호두나무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약 700년전 처음으로 광덕사에 심은 호두나무는 남아있지 않고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00년된 호두나무 앞에 유청신이 처음으로 호두나무를 들여왔다는 기념비만 남아 있다.

이렇게 유청신과의 인연으로 들여와 700년의 역사를 잇고 있는 호두나무는 유청신이 고려를 중국에 팔아넘기려는 속셈이 들통나며 '간신배를 따라 들어와 뿌리내렸다'는 말로 회자되는 불운을 안고 있기도 하다.

생태적으로 살펴보면 따뜻한 지역을 좋아하는 호두나무는 뿌리가 깊이 자라는 탓에 흙이 많은 지역에서 잘 자란다.

이는 천안지역이 호두나무 재배지로 적당한 생육조건을 갖췄음을 알 수 있으며, 호두나무를 이용한 호두과자를 개발해 천안을 호두의 고장을 알리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첫선을 보인 호두나무는 페르시아가 원산지로 실크로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당시 동서문화교류의 교통로였던 실크로드는 물물교류의 장이자 문화의 충돌과 빅뱅이 이뤄진 진원지였음을 호두나무의 유입경로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식물이 뿌리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듯 호두나무 역시 낯선 곳에 뿌리내리기까지는 그에 못지 않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적 모습에서 나무가 드러내지 않는 이면의 모습에 잠시 마음의 시선을 보낸다.



◈ 조선 3대 명기 '김부용 묘' 쓸쓸히

김부용


낮은 길고 산이 깊어 푸른 풀 향기로운데

봄날이 가는 길이 아득하여 분별하기 어렵네요

물어봅니다, 이 몸은 무엇과 흡사해 보이는지

해거름녘 하늘 끝에 보이는 외로운 구름이지요

-저문 봄날 동문을 나서며

서정적 문향을 품고 있는 이 시는 여류시인 운초 김부용의 시다. 천연기념물 호두나무와 함께 천년고찰 광덕사로 세인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김부용은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조선 3대 명기 중 한 사람이다. 광덕사를 끼고 오른쪽으로 꺾어 산을 오르면 김부용의 시비가 서 있고, 800M 거리에는 ‘여류시인 김부용의 묘’가 쓸쓸하게 홀로 있다.

여섯살 때 부모를 여읜 부용은 가정에 닥친 불운으로 기생이 된다. 가무와 시문에 능했던 그녀는 19살 때 평안감사로 부임한 77살의 김이양을 만나 운명적 사랑을 하게 된다. 지금 시대에는 세기적인 사랑이라 운운하겠지만 58살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며 사랑한 두 정인의 모습은 상상으로도 아름답다. 이후 그가 죽자 부용은 평생 수절하다 그의 무덤 옆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김으로써 수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틋한 사랑의 화신으로 대변되고 있다.

부용의 사랑은 당시 시대적 상황과도 맥을 같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을 위해 절개를 지킨 그녀의 시를 살펴보면 세대와 세대를 넘어서며 사랑이 지닌 위대한 힘을 전해준다. 얼굴도 아름다웠지만 시문에도 능해 문집 ‘부용집’에 150편의 시가 광덕사 호두나무와 함께 전설처럼 전해져 오고 있다.

광덕사 대웅전으로 들어서기 전 보화루 누각 앞 계단에서 만날 수 있는 호두나무는 우람한 모습으로 하늘로 치솟듯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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