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과 문화 동질성
박지성과 문화 동질성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23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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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우승했다. 그러면 박지성은'

이런 귀납적 설정은 소위 '맨유'라는 약칭으로 불리어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2007/2008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우승에 대해 한국인들이 갖게 되는 당연한 의문이다.

'맨유'가 세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구단임을 모르는 이는 많지 않다. 축구종주국이며 프로축구에 열광하는 국민성과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펼치는 순간순간의 감동은 프리미어리그가 갖는 인기의 비결이다. 그런 프리미어리그가 그리고 '맨유'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된 것은 온전히 박지성 때문이다.

열혈 축구팬이 아닌 경우에는 대부분 박지성으로 인해 퍼거슨감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라이언 긱스라는 선수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맨유'는 올해 프리미어리그 우승에 이어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하는 쾌거를 일구어 냈다. 그러나 22일 새벽(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첼시와의 경기는 '맨유'의 우승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의 관심은 시큰둥하다.

바로 전날까지 '박지성, 아시아를 위해 뛴다.'거나 '(박)지성 선발출전=승리의 신화 이어질까.'라는 외신보도에 대한 기대가 급격하게 냉각된 이유는 바로 박지성이 선발출전은 물론 교체선수 명단에서도 제외됐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다.

한국인에게 박지성은 이미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추억하는 문화적 상징이 되어 있다. 그런 박지성이 빠진 결승전은 '맨유'의 우승 금자탑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기껏해야 해외스포츠의 한 토막이거나 상관이 별로 없는 일로 전락하는 문화적 단절로 이어지는 법이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저서 '숨겨진 차원-공간의 인류학'에서 "다른 문화에 살고 있는 인간은 상이한 감각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홀의 주장은 인간이 공간을 구조화하고 사용하는 방식에 따라 문화가 미치는 영향을 설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에게서)박지성으로 인해 파생된 문화적 양태는 축구를 통해 영국과 한국의 공간을 동일시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런 문화적 상징성은 박지성의 결장으로 인해 순식간에 극명한 거리감과 차이를 가져오는 작용점이 되기도 한다.

쇠고기 논쟁이 뜨겁다 못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면서 또 다른 계층간의 불신을 우려하게 하고 있다. 국민의 불안은 채식위주의 문화적 성향이 육류소비의 증가로 나타나는 이질적 요소와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계층간의 불신은 소위 기성세대의 선택과 이와는 무관했으나 어쨌든 이로 인해 앞으로의 먹거리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느끼는 10대들의 촛불이 문화적 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야기된다.

우리의 전통적인 식생활에서 쇠고기를 먹는 일은 굉장히 커다란 사건이었다.

소는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으며 농경의 동반자라는 인식과 동시에 입신양명의 희생양으로의 상징성이 컸다.

몇해 전 찾은 진주에서 단군에 제를 올리기 위해 뙤약볕 아래에서 선홍색 쇠고기에 연신 부채를 부치며 육포를 만들던 촌로의 형언할 수 없는 경건함은 지금도 소에 대한 신성성으로 각인되어 있다.

소가 그리고 쇠고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보듬고 싶은 문화적 상징성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성의 결장이 '맨유'의 후반 고전의 결정적 이유가 됐음을 믿고 싶은 문화적 동질성만큼 소도, 쇠고기도 우리 문화와 괴리가 없게 되길 제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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