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욱 부지사
노화욱 부지사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5.19 2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김 승 환 <충북대 교수>

지난해 봄이었다. 노화욱 부지사에 대한 성토가 비등했다. 충북도청과 시민단체가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복지여성국장 문제로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 정무부지사라면 그 이름에 걸맞게 사회와 행정을 연계하면서 여러방면을 두루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비판의 근거 지점이었다. 이 비판은 정우택 지사께서 행사한 인사권에 대한 비비시시(非非是是)로 이어졌다. 이어 민중단체로부터는 더욱 강력한 비난이 쏟아졌다. 하이닉스매그나칩 비정규직 노동자문제 때문이었다.

한편 공무원 사회나 보수적 사회단체에서는 충북사람이 아니라는 점과 외부영입이라는 것 때문에 냉소적 태도가 만연했다. 이를 인식했음인지 정우택 지사께서는 '명칭을 경제부지사로 바꾸고 싶다'라는 직제(職制)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이처럼 노 부지사를 둘러싸고 취임전후 이런저런 비판과 질시가 눈처럼 쏟아졌다. 귀가 2개나 있는 노화욱 부지사가 그것을 못 들었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한번도 불편한 내색을 한적이 없다.

취임 2년이 흘렀다. 노 부지사는 과묵한 성품과 일체의 묵언으로 일관하고 오로지 경제특별도에 매진했다. 경제라는 화두를 잡은 그는 과연 경제의 수도사(修道士)였다. 충북이 이룬 투자유치 14조라는 빛나는 훈장은 정우택 지사께서 이룬 성과이자 충북인 모두가 함께 이룬 업적이겠으나 노화욱 부지사의 역할이 대단했다는 것은 정확하게 기록되어야 한다. 그런 그는 봉급의 대부분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희사했고 진땀을 흘리면서 봉두와 난발로 기업유치를 위해 뛰어다녔다. 그의 성실함과 부지런함 때문에 운전기사도 덩달아 격무를 해야 했다.

그런 노화욱 부지사가 5월8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제 떠나려 합니다'라는 시적인 표현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상당한 공력(功力)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글이다. "문득 고개를 드니 2년이 흘렀다, 아낌없이 불타는 것은 아름답다, 소멸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등 은유와 상징을 구사한 유려한 문장은 예술가가 되기에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거니와 노화욱 부지사의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은 전문가수준에 이르러 있고 그의 신사적인 태도는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될 만하며 소탈한 그의 품성은 누구나 편안하게 만든다. 한편 그는 쓰기를, "취임 전에 기업에만 있던 사람, 경상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들이 많았으나 말보다는 성과로 답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일했고 전쟁의 연속이었다. 충북이 경기도라는 골리앗 같은 존재와 싸워 이겼다는데 무엇보다 기쁘다. 그동안은 도전의 시간이자 봉사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나름대로 인간존재론에 대한 자기성찰이 담긴 이 회상에 나는 십분 동의한다. 그 점에서 노화욱 부지사의 희생과 노력에 찬사를 드린다.

노화욱 부지사께서 '자유혼을 상실치 않기 위해' 사의를 표명한 것은 현명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처신이다. 지난 2년은 경영인으로 성공한 노 부지사께서 행정관료로서도 유능했음을 보여준 세월이다. 그러니까 충북은 그가 가진 자산을 잘 활용했던 셈이고 그 역시 최선을 다하여 제2의 고향인 충북을 위하여 희생했다. 노 부지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충청북도는 앞으로도 외부영입 인재를 잘 활용하는 지혜를 살려야 한다. 상대적으로 배타성은 적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충북이 폐쇄성을 폐쇄하고 열린 지역주의를 토대로 한 다양성의 사회로 이행할 필요가 있다.

노 부지사께서는 지난 10여년의 인생을 충북에 바쳤고 그것은 연기법(緣起法)의 인연이며 또 그만한 의미가 있었으므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충북을 사랑하는 충북의 주인일 것으로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