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만세" 세월넘어 아직도 그곳에
"독립만세" 세월넘어 아직도 그곳에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2.27 2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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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암산에 손병희 등 민족대표 6인 동상 건립
충청지역 3·1운동 흔적을 찾아서

제 89주년 3·1절을 맞이해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하도록 한 역사의 유산 3·1운동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는 의미로 우리 주변의 3·1운동 흔적을 찾아봤다.

편집자주

괴산 시위로 이어져 충북 민족해방 운동 점화

"지난 1919년 3월 아침부터 파고다에는 4000∼5000여명의 학생들이 모여들었는데, 정오를 알리는 오포(午砲) 소리가 울리자 학생 정재용(鄭在鎔)이 공원 내의 팔각정에 올라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에 학생들은 태극기를 꺼내 흔들며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공원을 나설 때는 수만의 군중이 호응하여 함께 시위 행진을 감행하여 대한문(大漢門)으로 향하였다. 전국에 번진 3·1운동 만세시위는 이렇게 탑골공원에서 점화되었던 것이다."

3·1운동 하면 떠오르것 중 하나가 서울 탑골공원이다. 파고다공원으로도 불리는 이곳은 지난 1919년 일제강점에 온 국민이 항거해 일으킨 3·1운동의 불을 댕긴 발화지다. 손병희 등 33인의 민족대표가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할 때, 학생들이 중심이 된 탑골공원 시위행렬은 많은 시민들이 가담하며 전국적으로 번져나간다. 이날 오후 6시경에는 진남포, 선천, 안주, 의주, 원산, 함흥, 대구 등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2일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독립만세와 시위운동이 전개된다. 이렇게 민족해방운동의 불을 댕기며 번져나간 3·1 독립운동은 충청지역으로 확대되며 보은과 충남 병천 아우내 장터와 청주 육거리 시장, 괴산 제월대 등 충청지역의 3·1운동의 역사 현장으로 기록되고 있다. 제 89주년 3·1절을 맞아 민족정신의 맥을 지켜나가고 있는 충청지역의 역사 현장을 살펴보았다.

◇ 횃불처럼 일어난 충남 병천 아우내장 터

탑골공원이 3·1운동의 발화지라면 병천면 아우내장 터는 만세운동의 역사적 획을 그은 현장이다. 당시 16세로 이화학당에 재학중이던 유관순은 3·1운동으로 학교가 폐쇄되자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3·1운동에 앞장선다. 그리고 4월1일,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는 군중을 향해 일본이 총으로 제압한다. 이때 3000여명 군중에 태극기를 나눠주고 시위에 앞장섰던 유관순은 반죽음이 된 채 일본헌병에 체포된다. 그리고 감옥에서 고문과 협박 속에 세상을 뜬다. 현재 병천에는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 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아우내장 터가 내려다보이는 구미산에 아우내독립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 청주 3·1공원과 손병희 유허지

우암산 자락에 조성된 이 공원은 3·1 독립선언서 민족대표 33인 중 충북출신인 손병희, 권동진, 권병덕, 신홍식, 신석구, 정춘수 선생의 동상을 건립해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80년 세워졌다. 6명의 대표 중 친일행각이 드러난 정춘수 동상이 내려지며, 현재는 5명의 민족대표 동상만을 볼 수 있다. 삼일 공원과 함께 북이면 금암리에 있는 손병희 유허지는 충북의 3·1운동 정신을 기리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찍이 동학에 입도해 동학 교조가 된 선생은 3·1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독립의지와 민족정기를 대내·외로 보여줬다. 손병희선생이 태어난 유허지에는 생가와 유허비, 기념관이 있다.

◇ 괴산 벽초 홍명희와 3·1운동

전국으로 확산되던 만세운동은 괴산시위로 이어지며, 충청북도에 민족해방운동을 점화시킨다. 충북 최대의 만세운동이었던 괴산 만세운동은 벽초 홍명희가 그의 생가에서 만세운동 준비하고 1919년 3월 19일, 괴산 장날에 의거한다. 그 뒤 4차례에 걸쳐서 운동을 벌임으로써 중부지방 최대의 민족독립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용락의 삼일운동실록은 "인산리 홍명희는 경술국치에 순절한 금산군수 홍범식의 장남으로서 고종황제의 국장에 조문하고자하여 서울로 올라갔다. 마침 청주인 의병장 한봉수를 만나서 손병희 자택을 동반 방문하였다. 의암은 반갑게 영접한 후, 독립선언서를 내놓고 독립운동에 대한 제반사를 설명한 후, 제군도 우리 고장 청주와 괴산에 책임지고 이 운동에 협력 활약해 주기를 신신 당부하였다"며 괴산지역의 3·1운동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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