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군(郡)의 맹주로 그치려나
3군(郡)의 맹주로 그치려나
  • 권혁두 기자
  • 승인 2007.10.02 2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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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혁두<부국장(보은·영동·옥천)>

보은·옥천·영동 등 남부 3군이 다시 한 번 정가의 조명을받고있다.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경선과 관련해 이른바'동원선거' 파동의 진원지로 꼽히면서부터다. 손학규 후보가 일시 경선무대를 이탈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면서 지역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남부 3군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충북에서 전멸하다시피한 열린우리당의 단체장 후보 3명이 모두 당선돼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두 사례 모두 그 중심에 이용희 국회 부의장이 서있고, 지역구에 대한 그의 막강한 영향력이 과시됐다는 공통분모를 갖는다. 두차례 모두 지역 유권자들에게 찝찝한 뒤끝을 남겼다는 점도 비슷하다. 특정 정당에 국회의원과 단체장들을 몰아준 전례도 그렇고, 첨예한 정파간 대립과 분쟁을 촉발시킨 이번 사례도 지역주민들이 반길만한 일은 아니다.

이 부의장은 "차량으로 투표인을 실어나른 사실이 한 건이라도 드러나면 은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지만, 그렇게 당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일찌감치 정동영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캠프의 최고고문을 맡은 이 부의장 입장에서 정 후보에 대한 지원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는 것이다. 충북 전체 인구의 9.5%가 사는 지역에서 전체 투표자의 40% 이상이 나왔고, 그들의 80% 가까이가 한 후보에게 몰표를 준 것은 우선 산술적으로 경선의 의미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비껴가기 어렵다.

예선의 목적은 본선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선수를 가려내는 것이다. 대통합 민주신당이 국민경선으로 판을 확대한 것도 민심에 부합하는 후보를 찾아 한참 앞서가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따라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9%가 40%를 대변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민심이 걸러질 리 없다. 3군의 몰표가 경선의 취지를 훼손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이 부의장 해명대로 '차떼기 동원'은 없었다고 하더라도 군수들이 투표장을 드나들고 공무원들이 투표인으로 등록된 정황은 그 자체로 의혹이다.

4선의 최고령 의원에 부의장까지 역임한 이 부의장은 명실상부한 입법부 원로요 좌장이다. 내년 선거에서 5선을 일구고 의장에 올라 국가경영의 한 축을 떠맡겠다는 포부도 들려온다. 그러나 아들뻘인 40대 초선의원의 공박을 받고 "너희는 안했느냐"며 시비를 가리려는 모습에서 거목의 풍모는 발견하기 어렵다.

이 부의장은 얼마전 자신이 옥천에서 주관한 행사에 늦게 참석한 기관장을 심하게 면박해 구설에 오른 적도 있다. 참석자들이 지켜보는 공식행사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보니, 이 부의장이 지역구를 자신의 영지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다 합쳐봐야 인구 15만에 불과한 소지역의 맹주에 자족하는 모습으로 비쳐져 많은 이에게 아쉬움을 남겼던 대목이다.

이 부의장은 '이합집산'과 '감탄고토'가 난무하는 정치판에서 그나마 의리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통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30년 이상을 풍찬노숙하며 고락을 함께 해 온 정치역정이 이를 웅변한다. 이번에 정 후보를 지원한 것도 지난 선거에서 받은 도움을 갚기 위해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의리를 지켜야 할 대상과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이번 경선에서 그는 정 후보와의 의리를 지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원로의 면모를 기대해온 지지자들은 실망시켰다. 이 부의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역구의 투표율과 정 후보 득표율이 높은 것은 주례와 취업알선 등을 통해 꾸준히 인맥을 구축해온 결과"라고 주장했다.

끈끈한 인맥을 자랑하기 전에 이 부의장이 새겨둬야 할 사실이 있다. 지역에는 당의 맏형으로서 당의 미래를 걱정하고, 정계의 좌장으로서 정치의 전범을 모색하는 큰 정치인으로 그가 거듭나길 바라는 유권자들도 적지않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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