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경제 혼란 … 식량생산 증대 절실
해방 이후 경제 혼란 … 식량생산 증대 절실
  • 엄경철 기자
  • 승인 2020.11.02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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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시리즈/ 충북경제 100년사-소금배에서 KTX까지
⒀ 해방후 국가경제 재건 중심 충북-충주비료공장
충주비료공장 정부 수립 후 국내 최초 美 지원 건설
비료자급 능력 향상·고용증대·외화절약 기여 등 호평
1977년 전남 여천에 동양 최대 규모 남해화학 건설
1비료공장·충주암모니아센터 생산 중단 `역사속으로'
국내 최초로 미국 자본으로 건설된 충주비료공장 철거 모습(1980년대). /충북도 제공
국내 최초로 미국 자본으로 건설된 충주비료공장 철거 모습(1980년대). /충북도 제공

 

해방 이후 남한경제 혼란 속에 식량생산 증대가 중요한 국정과제 중 하나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부 유출을 줄이고 식량생산 증대를 위해 국내 비료생산시설을 갖추는 것이 절실했다. 이에 정부는 1959년 충주시 목행동에 충주비료공장을 건설했다. 국내 최초로 미국의 지원을 받아 건설한 화학비료 제조업체였다.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미국 회사와 합동으로 진행한 공장건설공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당시 비료 수입의존도가 높았다. 1960년대 외국 원조규모가 약 2억5000만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비료 수입에 1억달러를 지출할 정도였다.

1961년 미국에서 발행된 `자유세계'에 따르면 공장 준공식에 800여명의 정부 고위직 관리와 외국 사절단이 참석했다. 규모와 시설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소개됐을 정도로 국내외의 관심과 기대속에서 충주비료공장이 출발했다.

마산일보(1955년 10월12일)는 “충주비료공장 기공식이 22일 현지에서 거행된다. 이 비료공장은 FOA(미국의 대외 원조 계획을 관할하던 행정기관) 1954년도 자금 2300만원이 투입된다”고 전했다.

이 신문(1958년 5월 3일)은 “주한미경제조정관 윌리암·E·원씨는 1일 하오 기자회견석상에서 충주비료공장 불하(拂下))문제에 언급하여 원 조정관은 조속한 시일 내에 동(同)공장이 공매될 것을 희망하고 있으며 한미 양측의 견해를 상호만족시킬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동 충주비료공장과 같이 대규모의 고가(高價) 생산공장을 공매하는 것이 한국으로서는 처음있는 일임으로 어느 정도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고 보도했다.

충주비료공장이 준공되기도 전에 미국 자본이 투입된 상황에서 미국 측이 공매문제를 공식 거론한 것이다.

충주비료공장은 1961년 제1비료공장을 요소비료 연간 8만5000t 생산 규모로 확장했다. 1973년 충주암모니아센터(제6비료공장)를 요소비료 연간 23만1000t 생산 규모로 확장해 자급자족 및 수출 기반을 다졌다.

충주비료공장은 비료자급 능력 향상, 고용증대, 외화절약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국내기술로 만든 첫 번째 화학비료 공장이라는 점과 우리나라의 중화학 공업 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충주비료공장은 1977년 동양 최대 규모로 전남 여천에 남해화학(제7비료공장)이 건설되면서 1983년 충주제1비료공장, 충주암모니아센터가 생산이 중단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충주비료공장 건설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국내 최초로 건설되는 비료공장이다 보니 우리나라는 건설방법을 모르는 상태에서 공사가 진행됐다. 전적으로 미국회사에 의존했다. 미국 회사의 의견에 따라 공사가 진행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1955년 착공해 1958년 준공 예정이었던 충주비료 공장은 건설을 담당한 `맥그로 하이드로카본(McGraw-Hydrocarbon)'과 5차례 계약을 수정했다. 건설비도 당초 계약한 금액보다 70%가량이 추가됐다. 공사기간도 21개월 연장되면서 1961년 4월29일 준공할 수 있었다.

충주비료공장은 국내 최초의 요소비료공장으로 우리나라 비료산업의 초석을 다졌지만 진행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을 노출시켰던 것이다. 당시 언론도 문제를 제기했다.

부산일보(1961년 4월30일)는 `5년 반 만에 준공된 충비(忠肥)의 교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원조의 계획과 기술에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1961년 7월11일)은 충주비료공장에서 생산되는 국산요소비료 판매 예고기사를 실었다. 신문은 “충주비료공장에서 생산되는 국산요소비료가 11일경부터 농업은행에 의해 처음으로 자유 판매된다. 10일 현재 한국운수에 의해 운송 중에 있는 충주요소비료는 운송비, 조작비 기타 수속료 일체를 포함해서 한 부대당 3370환이다”고 전했다.

/엄경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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