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에서
가을 산에서
  • 이효순 <수필가>
  • 승인 2013.11.03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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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이효순 <수필가>

물감을 푼 것처럼 고왔던 하늘도 11월에 접어들며 회색빛이다. 모처럼 가을 산을 찾아 그 속에서 나도 가을의 일부분이 되었다. 맑은 공기와 오색 단풍이 눈길 닿는 곳마다 색동처럼 고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갈참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이제 겨울 준비를 서서히 하고 있는 듯하다.

유난히 덥던 여름도, 화려한 가을도 계절의 흐름에는 아무 말이 없이 변하는 자연에 순응하며 남은 생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한 산속, 나뭇잎이 서로 속삭이는 소리와 아직 겨울잠에 들지 못한 풀벌레의 울음이 가끔 산속의 정적을 깬다. 여기저기 눈에 띄는 단풍의 고운 빛깔이 마지막 가는 길을 화려하게 장식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마른 억새의 쓸쓸한 모습에 나는 가을 나그네가 되어 그의 친구가 된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산속의 세월을 온몸에 느끼며 단풍 속에 메마른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이따금씩 가울바람에 사각사각 속삭이며 마른 몸을 비벼 보지만 쓸쓸한 소리만 가을 나그네의 마음을 흔든다. 연갈색 억새꽃에 얼굴을 대어 본다. 보드랍다. 어머니의 포근한 품안처럼 그렇게 따뜻하다. 가을에만 느낄 수 있는 정겨운 모습이다. 마른 억새의 몸은 쓸쓸하지만 억새꽃은 어머니를 닮은 정겨운 매력이 있어 자꾸만 가까이 대어본다.

하늘이 보이는 산마루에 앉아본다. 산 빛의 빛깔이 모두 다르다. 산허리 부분은 화려한 색으로 정상 부분은 빛바랜 단풍으로, 그 가운데 소나무는 싱싱한 초록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단풍나무는 아직 고운 옷, 자신의 생에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가는 길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기위해 고운 모습으로 최선을 다해 한해의 생을 마감한다. 사람들처럼 미련을 두지 않고 아주 빈틈없이 가는 길을 준비한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산속의 어느 곳엔가 머물러 생을 마감하고 그 나무의 밑거름이 되어 정직한 자연으로 아름답게 돌아간다

우리 인생은 어떤가. 자연에 비하면 부족함이 많다. 자연처럼 욕심도 없고 미련도 없이 살지 않는다. 남보다 하나를 더 갖기 원하고 내어주지 않으려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산다. 그도 부족하면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을 훼손해가며 삶의 영역을 넓히려 많은 애를 쓰기도 한다. 모두 부질없는 일인 것을.

하산하는 길에 산 초입의 감나무를 바라본다. 고목처럼 생긴 것이 꼭 죽은 나무 같았다. 그러나 잎사귀 하나 없는 가지에 까치밥이 두 개 매달려 있다. 나비 두 마리와 새 한 마리가 까치밥을 각각 먹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지혜로웠던 우리 조상의 슬기가 가을빛처럼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가을 산은 묵묵히 세월을 안으며 말없이 버티고 있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자신을 철저하게 연출하며 요란하지도 않으며 성급하지 않게 삶을 영위해 가고 있다. 조급하고 여유 없이 사는 내 삶에 비하면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 고하는 인간 자신이 어찌 보면 자연에게 부끄러운 존재임을 보여준다.

자연과 가까이할수록 그들에게서 풍기는 고귀함은 누가 무어라 말해도 사람들의 인도자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모처럼 찾은 가을 산에서 삶을 배우고 아름다운 신의 오묘한 섭리 속에 나를 비추어 본다. 나도 고운 단풍처럼 그렇게 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닮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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