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37 - 야바위꾼들은 다 어디로 갔나 (1)
단상(斷想) 37 - 야바위꾼들은 다 어디로 갔나 (1)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3.05.0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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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범시인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70년대 초등학교 앞에는 소위 불량식품이라는 것을 파는 장사꾼들이 늘어져 있었습니다. 아침 등교 시간, 그리고 하교 시간에 맞춰 그들은 장이 서듯하여 등하교하는 꼬맹이들의 소중한 돈을 알궈가고 했습니다.

아이들도 그 재미에 학교를 더 일찍 가기도 하고 하교 길이 즐겁기도 했지요. 딱지에, 달고나에, 뽑기에, 맛탕에, 쫀드기 등등. 아이들의 입맛을 당기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학교 앞에는 존재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또한 삶의 낙이요 보람이었던게지요.

그 시절이 누구나 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었기에 그 분들이 그렇게 장사를 해서 호구를 이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적은 돈으로 장사를 하자니 다른 방도가 없었겠지요. 이런 사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먹거리와 놀거리를 파는 정상적인 상거래와는 달리 ‘야바위꾼’이 자주 출몰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 ‘야바위’란 교묘한 손놀림과 눈속임으로 상대방을 현혹시켜 상대방의 돈을 마지막까지 알궈먹는 짓, 그리고 그런 짓을 직업적으로 훌륭하게 해내서 결코 들키지 않아야 하지만 들키면 매를 맞기도 하고 매를 맞기 싫으면 자기 동료들과 더불어 칼침을 놓거나 칼빵을 당하여 감방에 가기도 하는 그런 사람을 ‘야바위꾼’이라고 합니다 - 기억에 남는 세 종류의 야바위꾼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방개 놀이’ - 사실 이 놀이를 야바위라고 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 커다란 양은 함지박에 어른 엄지만한 ‘방개’ - 그때는 방개도 참 많았는데 이제는 다 없어졌네요 -를 가둬 놓습니다.

함지박 모서리는 칸칸이 나누어져 있어서 거기에 돈을 걸고 방개를 풀어주면 방개는 자기가 선호하는 칸으로 들어 갑니다. 그 칸에 돈이 걸려 있으면 건 돈의 배를 받는 놀이었습니다. 종일을 쳐다보고 있다가 방개가 가장 선호하는 듯한 구석쟁이에 돈을 겁니다. 그러면 방개는 절대로 돈 건데를 가지 않고 새로운 신천지로 들어갑니다. 아무리 해도 돈을 딸 수 없는 놀이였습니다. 그러나 착한 아이들은 방개를 믿으며 굳세게 돈을 구하다가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대게 되고 그것이 걸려 반 죽도록 맞고 더 맞았던 기억 - 이 방개 놀이는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이길 수 없는 구조인 것이 신기합니다. 방개는 왜 돈을 건 곳을 싫어하는지 묻고 싶은데 - 방개는 아주 오래 전에 죽었고 그나마 방개 주인은 알 수도 있었겠지만 그도 이제 이승의 사람이 아닐테니 결국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 되어 버렸네요.

그러나 다음에 등장하는 야바위꾼에 비하면 그나마 ‘방개 놀이’는 양반이었습니다. 아주 작정을 하고 아이들의 돈을 알궈먹자는 전문 타짜 야바위꾼이 그 뒤에 버티고 서서 아이들의 돈을 털어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지나간 것은 모두 그립기 마련입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그 터널을 지나왔고 지나갈 것입니다. 지금 지나는 이 시기도 곧 그리워지겠지요.  

사람은 누구나 제 몸의 상처를 핥아 치유하고 사는 존재입니다. 지금 아프다고 앞으로도 아프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지나간 것은 고통스러웠지만 아름다웠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올 것은 더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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