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지역 토산물로 본 생태변화
괴산지역 토산물로 본 생태변화
  • 김성식 기자
  • 승인 2012.09.03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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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기자의 생태풍자
김성식 생태전문기자<프리랜서>

"백성들이 철 따라 정표로 가져오는 생치(生雉), 저담(猪膽) 등속이며 방안에 향기가 가득해지는 잣죽의 별미, 산저육(山猪肉)에 송이버섯 안주하여 천하절승 새재의 타는 듯한 단풍을 내려다보며 문경현감과 마주 앉아 국화주 잔 기울여 가며 내 고을 자랑하던 일. (중략) 이 고을을 떠나 어디를 가면 다시 이런 낙토(樂土)를 구경하랴."

충북도 전설지에 나오는 '울고 왔다 울고 간 연풍원님' 이야기의 일부다. 조선시대 연풍이 얼마나 외지고 작은 고을이었으면 부임하는 현감마다 한숨을 내쉬며 울고 왔다가 훗날 떠날 때는 지역민의 정 때문에 발길을 옮길 수가 없어 다시 한번 울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현감들이 고을 사람들로부터 대접받은 먹거리가 다름 아닌 생꿩과 돼지쓸개, 잣죽, 멧돼지고기, 송이버섯 같은 순수 토산물이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신토불이요, 오늘날에도 구미가 당겨지는 토속음식들이다.

산 좋고 물 맑은 곳에서 맛 있는 음식과 술을 대접받아 왔으니 떠나는 발길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으리라. 해서 이 이야기의 말미는 "차라리 승진이고 관로(官路)고 다 집어치우고 이 고을 백성으로 늙어 정든 산천에 묻혔으면 싶으리 만큼 떠나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부지중에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고 적고 있다.

내친김에 조선시대 연풍현을 포함한 괴산지역 토산물이 궁금해 옛 문헌을 살펴봤다. 토산물은 특성상 지역의 풍토, 특히 자연 환경 혹은 생태계와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토산물의 변화는 곧 자연 환경·생태계의 변화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 단서라 할 수 있다.

괴산지역은 조선시대 괴산군과 청안현, 연풍현으로 구성돼 있었으므로 이들 세 지역을 중심으로 주요 토산물(특히 야생 동식물 관련)을 찾아봤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괴산지역은 조선전기 야생동물의 털이나 가죽이 많이 산출돼 공물로 바쳐지기까지 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괴산군에서는 여우가죽, 삵가죽, 족제비털, 잡깃(雜羽) 등이, 연풍현에서는 곰털, 족제비털, 잡깃 등이, 청안현에서는 족제비털이 산출됐다. 세종실록지리지가 완성된 해가 1454년이니 550여년 전엔 연풍현에서도 곰사냥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버섯류로는 괴산군에서 느타리버섯과 석이가, 연풍현에서는 송이와 석이, 느타리버섯이 산출돼 이들 지역이 이미 오래 전부터 버섯고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조선후기 들어서는 토산물이 조금씩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대동지지를 보면 괴산군에서는 민물고기인 누치와 쏘가리가, 청안현에서는 은구어(銀口魚)가 토산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여기서의 은구어는 다름 아닌 은어다. 청안현은 지리상 금강수계에 속하는데 당시 그곳까지 은어가 올라왔다는 게 신기하다.

일제강점기가 되면 더욱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조선환여승람에 의하면 잉어, 노어, 담비가죽, 닥나무, 산나물 등이 괴산지역의 토산물로 올라있다. 하지만 이들 중 노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농엇과의 농어가 아닌 둑중개과의 꺽정이 인듯 싶다.

왜냐면 농어는 연해에 산란해 어린 시기를 기수지역에서 살다가 바다로 가는 습성이 있을 뿐 강 상류, 더군다나 내륙인 괴산지역까지 올라왔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약용이 아언각비에서 꺽정이를 '강에 사는 노어'라 불렀듯이 여기서도 노어로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흐르면 자연이 변하듯 인간사의 토산물도 시대에 따라 변했음을 기록은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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