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과 시경(詩經)의 국풍
K-POP과 시경(詩經)의 국풍
  •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 승인 2012.06.1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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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정규호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비엔날레부장>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The Living Ocean and Coast)'을 주제로 변화의 큰 물결과 도약의 새 물결을 추구하는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개막한 지 한달이 넘었다.

기대가 컸던 것에 비해 여러가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조직위원회가 애간장을 태우고 있는 속에서도 여전히 기대는 남아 있는 듯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여수세계박람회가 지구와 해양의 조화, 지구 생태계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추구하는 가운데 K-POP 공연을 매일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엑스포 팝 페스티벌'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공연은 한류와 엑스포를 결합, 남해안의 새로운 문화상징을 만들고 살아난 여수신항의 모습들을 세계에 알리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하지만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관람객 숫자를 늘리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는 반발과 함께 박람회 본래의 취지와 주제가 퇴색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시경(詩經)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시경(詩經)은 지금으로부터 2천 몇 백년 전 중국 사람들의 노래를 모은 책이다.

시경은 국풍(國風)이라 불리는 한 무리의 바람으로 시작된다. 국풍은 시경의 백미로 손꼽히는데, 역시 동서고금 인간의 최고 관심사인 사랑노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고 국풍에 사랑타령만 있는 건 아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불가피하게 만날 수밖에 없는 고단함과 어려움, 세상의 어두운 일면과 부조리에 대한 풍자의 노래도 적지 않다.

옛 중국 주나라에는 채시관(採詩官)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제후들이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백성의 불만은 없는지를 살피는 일을 맡은 관리인데, 그 평가 방식이 항간에 떠도는 노래를 채집해 민심파악의 잣대로 삼았다.

우리에게도 민심을 뒤흔드는 재미있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니, 신라의 선화공주를 꼬여 낸 백제 무왕의 서동요가 그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런 아주 오래 전 옛날에도 민심의 흐름을 파악하는 잣대가 됐던 국풍의 전통이 이상하게 왜곡된 경우도 현대사에 등장하니, 서슬 시퍼렇던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당당하게 열렸던 '국풍 81'이 그것이다.

국풍81은 지금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바람, 바람이려오'로 흥얼거려지는 노래는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국풍 81'은 1981년 5월 28일부터 6월1일까지 닷새 동안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전국 대학생 민속·국학 큰잔치를 말한다.

큰잔치가 열리기 1년 전, 5월 광주의 비극을 외면한 채 혹시라도 빚어질 수 있는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방편을 중국 고전 시경의 국풍에서 차용했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노래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면서 '바람이려오'는, 해마다 시월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흘러나오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의 노래 <잊혀진 계절>을 낳으며 한 사람의 대중스타를 만들었다.

지금 노래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흐른다. 다행스럽게도 K-POP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면서 한류의 열기를 이어가고 있으나, 그런 문화의 흐름에 대한 지속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박람회에 K-POP이 지축을 뒤흔들 정도로 위세를 떨치면서 그것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도 한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문화가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전략이나 홍보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스럽지 않다.

백성의 착한 마음을 올곧게 읽어내는 일, 그리고 그런 백성의 진솔한 생각을 노래에 담아 부를 수 있는 진정성이 문화의 힘을 오래가게 할 것이다.

문화는 섣부른 포장이나 엉뚱한 왜곡 앞에서 참생명을 잃게 되는 법. 바람의 방향이 일정하지 않는 2012년 유월의 타는 목마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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