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籠城)
농성(籠城)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1.08.24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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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농성(籠城)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적에게 둘러싸여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킨다'라는 뜻과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한자리를 떠나지 않고 시위하다'라는 두 의미를 담고 있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위 방법의 하나로 법적인 해결을 기대할 수 없거나 억울한 심정을 대중에게 직접 호소하고자 할 때 사용된다.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전제로 상대를 압박해 요구사항을 수용케 하는 투쟁의 한 방법이다. 과거에 천성산 터널에 반대한 지율 스님의 목숨을 건 단식이나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 고공 크레인에서 정리해고 근로자의 복귀를 위해 200일 넘게 하는 싸움 등이 대표적인 농성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전쟁에서 수적 열세를 딛고 목숨을 건 비장함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자 할 때 사용하는 배수진과 같다. 강을 등지고 진을 쳐 퇴로를 스스로 차단해 오로지 싸워서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극도의 불안감 속에 역으로 초인적인 사기를 진작할 목적으로 종종 사용된다. 한(漢)나라의 한신이 조(趙)나라 군대를 물리칠 때 이 방법을 썼고, 임진왜란 때 신립장군 또한 북상하는 왜군을 겨냥해 8000여 명의 군졸로 탄금대를 뒤로 배수진을 쳤지만, 안타깝게 패해 한양을 손쉽게 빼앗기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청원군 부용면에 있는 아세아제지㈜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100m 높이의 소각 굴뚝에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아세아제지㈜는 경영상의 문제가 아닌 한개 부서를 아웃소싱하면서 다른 생산부서로 전환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인 해고를 단행했다. 절박한 경영상의 문제도 없고 정리해고를 피하기 위한 해고회피노력도 없었다. 부당해고를 당한 4명의 근로자가 충북지방노동위원회 구제를 신청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으나 사용자가 불복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요청한 바 재심신청 역시 이유가 없다고 기각했다. 그럼에도 회사는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통해 대법원까지 가려고 한다.

얼마 전에 이분들을 만나 면담을 한 적이 있다. 해고를 당한 뒤 대학에 다니는 아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군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눈시울을 적시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반면에 억울함을 풀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단호한 의지도 읽을 수 있었다. '해고는 죽음이다'라는 말처럼 가장의 해고는 한 가족을 일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노조에 대한 분노와 수십 년을 몸담은 회사에 대한 배신감은 노동자 자신을 병들게 한다. 더욱이 회사를 상대로 한 지루한 법정 다툼은 개인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벅찬 현실이다. 결국은 자신이 근무하던 굴뚝을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로 회사는 그를 몰아갔다. 집단에서 퇴출당한 개인은 무력하다. 생존에 대한 절박감이 농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한다. 우리 사회는 그 절박감에 귀 기울일 책임이 있다.

계속된 흑자 경영과 고용창출을 통해 지역 사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하는 회사가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조차 이행하지 않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기업의 이미지와 명성에 걸맞지 않다. 부당해고를 자인하면서도 소송절차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려는 의도는 책임 있는 기업이 할 도리가 아니다. 햇빛 한 줌도 피할 수 없는 소각 굴뚝 위에서 뿜어 나오는 유독 가스를 맡으며 목숨을 담보로 농성하는 근로자에게 법적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는 회사의 결정에 깊은 우려를 할 수밖에 없다. 아세아제지의 문제 해결 의지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 장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이 되지 않도록 아세아제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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