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 충청타임즈
  • 승인 2009.07.09 22: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우영의 에세이
김우영 <소설가>
   복잡다기한 세상사를 살다보면 우린 때로 '사는 게 복잡하고, 고통이다!', '사는 게 이렇게 버거울 수 있느냐 !'하고 푸념과 탄식을 한다.

인간이란 이름으로 태어난 우리의 삶이 그저 새롭고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생의 내음으로 점철되어야 함에도 ,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는 참으로 고난하고, 힘들기 짝이 없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는 자살이라는 큰 죄업으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러나 높은 산에 올라 보라. 점점이 게 딱지처럼 이어진 집들, 그리고 바둑판처럼 펼쳐진 들녘, 꼬리를 달고 질주하는 손톱만한 차량들. 다 모두가 현대문명의 이기의 산물이요, 우리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현실에의 집착이 빚어낸 결과일 수밖에 없다. 또 비행기를 타보라. 새 깃털 같은 양탄자를 깐듯한 흰구름 장막으로 산하,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다. 한 줌의 손에 잡힐 듯 들어오는 저 아래 산하의 이기들을 내 것으로 소유, 치부하고자 싸우는 우리 인간들.

드넓은 바닷가를 가보라.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수평선 그 위로 고깃배 통통거리며 오가고 그 선단 위로는 갈매기 한가롭게 비상하고 있다. 각종 물욕으로 가득한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푸른 창해의 바다는 진실,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우리는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한걸음 뒤로 비켜나 생각해 보자.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그림을 그리다가 자꾸만 뒤로 멀찌기 벗어나 이젤에 걸려 있는 화면상의 구도를 바라보는 것은 가까이 집착으로 인한 객관성의 결여와 자칫 그림의 구도가 한쪽으로 흐르는 걸 예방하기 위함이다.

사심과 욕심, 집착과 이기를 다 버리고 무소유의 드넓은 사유에서 세상을 보라. 그러면 참으로 가볍고 아름다운 진리와 미래가 보이는 세상이 올 것이다.

'생즉사 사즉생'이라.

살아 있는 것이 죽은 것이고, 죽은 것이 사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면 오고 가면 가고,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쁜 것이지. 굳이 욕심 가득한 인간의 잣대로 세상을 재려 하니까 늘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이다.

'낙이불류, 애이불비'

이는 즐거운 일이 있다하여 너무 즐거워 하지 말고, 슬픈일이 있다하여 너무 과하게 슬퍼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 기쁘다 보면 내일 다시 불행이 오고 또 다음엔 행복의 꽃이 피듯이 예고 없이 윤회하는 것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했지 않았던가.

호수와 같이 담담히 차분하게 매사를 대하다 보면 즐거워 할 일도, 슬퍼할 일도 없다. 그저 담담하고 그윽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 웃고 잘 우는 사람을 '광대놀음'이라고 하고, 수시로 말을 바꿔 하는 사람을 '조령모개' 식 인간이라고 말한다.

생즉사, 사즉생.

삶에 대한 지나친 집착, 죽음에 대한 불안과 초조. 이것이 우리 인간을 추하고 불안하고 이기적으로 만든다.

살다보면 죽는 것이고, 죽다보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아니, 모든 우주의 삼라만상이 태어나고 죽고 다시 씨가 뿌려지고 또 성장하고 그렇게 도는 것이 우주의 섭리요, 세상의 이치이다,

담담하고 그윽하게 삶을 관조하며 살고, 깊이 있는 혜안과 성찰, 미래를 살피는 것,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 시대를 사는 이상적인 군웅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