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모(歲暮)풍경
세모(歲暮)풍경
  • 남경훈 기자
  • 승인 2008.12.2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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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남 경 훈 경제부장

2008년 무자(戊子)년 쥐띠해가 꼭 열흘 남았다. 정권 교체, 고유가·고물가·고환율 대란, 세계경제위기 등 올 한 해도 격동은 끊이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언필칭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고들 한다. 그만큼 세상인간사는 복잡한 일들이 많이 생긴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요즘 힘들었던 한 해를 축약한 사자성어와 그동안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유행어( )들이 넘쳐난다. 구인구직 포털업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뽑은 올해 사자성어는 '은인자중(隱忍自重)'이라고 한다. 마음속에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몸가짐을 조심한다는 뜻이다. 경제난 속에 직장인들의 비애를 표현한 말이다.

구직자는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일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일)을 꼽았다. 최악의 취업난이 반영됐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기 때문인지 정치권에서는 '대실소망(大失所望)'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대선정국 등 혼란과 갈등을 뒤로 하고 새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가 컸지만 계층·지역간 갈등,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 어려운 경제상황 등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실정을 빗댄 말이다. 산중수복(山重水複 갈 길은 먼데 길은 보이지 않고 난제가 가득한 형국), 허장성세(虛張聲勢 소리만 요란하다) 등도 공감대를 얻었다.

경제분야도 눈길을 끈다. 증권가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한 올해 증시를 가장 잘 설명하는 사자성어로는 살얼음을 밟는 것과 같다는 뜻의 '여리박빙(如履薄氷)'이었다. 이는 올해 국내외 증시의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SK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꼽은 사자성어는 재미를 더한다. 그중 눈에 띄는 사자성어( )는 '하악하악'이다.'하악하악'은 거친 숨소리의 의성어 격인 인터넷 신조어이자 소설가 이외수가 올해 펴낸 신간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해동안 쏟아 부은 SK인의 노력이 거친 숨소리 '하악하악'에 담겨 있다"고 한 CEO는 설명하고 있다.

또 국민들은 말 한마디에 혀를 차야 했다. 경제난 속에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 실수가 으뜸이다.

강 장관은 국회에서 "서민에게 대못을 박으면 안되고 고소득층에게 대못 박는 건 괜찮으냐"고 했다. 또 "집없는 사람에게 그린벨트는 분노의 숲이다", "그린벨트나 환경 문제는 후손들이 걱정할 일이니 우리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어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라며 "세금으로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하는 것일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 "사실은 (4000만원짜리) 싸구려 골프 회원권"(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등의 장관후보자들의 말도 조롱을 받았다.

인터넷 도박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방송인 강병규씨는 처음 "도박을 할 줄도 모른다"고 부인하다가 조사 후 "인터넷 도박이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해 공분(公憤)을 샀다. 말의 성찬 속에 한 해는 저물고 있다. 반성하고 숙연해지는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는 공사장에서 쓰이는 망치와 못뽑이가 등장했다. 또 부시는 이라크 기자에게 신발 세례를 받았다. 그 기자는 아랍권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세모(歲暮)풍경이 참으로 다양하다. 조선시대에는 해마다 세밑인 섣달 그믐이 되면 고관들이 왕에게 문안(問安)을 하고 양반가에서는 가묘(家廟)에 절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집안마다 웃어른을 찾아 뵙고 묵은 세배를 올리고 친지들끼리 특산물을 주고받으면서 한 해의 끝을 뜻있게 마무리했다.

선조들의 세모 풍습을 본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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