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 문백전선 이상있다
283. 문백전선 이상있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8.19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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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보무사<598>
글 리징 이 상 훈

"목천, 나와의 옛정을 생각해서 한번만 살려주시게"

"이곳은 우리 병천국의 최전선! 정해놓은 길 이외에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지나갈 수 없는 군사적 요충지임을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진한 자주색 갑옷에 은빛 투구를 쓴 키가 큰 목천이 염치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다시 이었다.

"이보게 목천! 실은 말이야. 에, 뭐랄까. 내가 요즘 원기가 영 신통치 못해서 사람 몸에 좋다는 약초(藥草)라도 좀 구해볼까해서 여기까지 왔다네. 그렇지 여보"

염치는 이렇게 말하며 동의라도 구하려는 듯 힐끗 자기 아내를 쳐다보았다.

"그, 그래요. 이 사람 몸이 너무 허약해서 저와 함께 약초를 캐려고 왔어요."

그의 아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약초를 캐러온 사람의 옷차림이 어찌 그러한가 약초 캐는 사람이 마차를 몰고 와"

목천이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염치 내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저어, 이봐! 목천! 이 이거. 뭐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지극히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니 웬만하면 적당히 그냥 넘어가 주시게. 내 이곳이 군사적으로 위험하고 중요한 곳인 줄은 정말로 몰랐다고."

"그, 그래요. 이 분 말씀이 말이 맞아요. 그러니 제발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

염치 내외가 몹시 비굴한 태도로 목천에게 통사정을 했다. 그러자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던 목천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옆에 있는 어느 부하에게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물었다.

"이런 곳에 함부로 들어오는 자에겐 어떠한 벌칙을 주기로 되어있지"

"지위고하 이유불문하고 즉시 목을 베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부하가 부동자세를 취하며 목천의 물음에 대답했다.

"염치! 들었지 그러니 나는 어쩔 수 없이 정해진 군법(軍法)에 따라 시행하도록 하겠네."

목천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허리에 차고 있던 장검(長劍)을 쑥 뽑아들었다. 그러잖아도 번쩍거리는 장검의 금속면이 마침 이들 머리 위에 떠있는 태양의 강렬한 빛을 받고 보니 더욱더 섬뜩하게 번쩍거렸다.

"으에엥 목, 목천!"

목천이 빼어든 칼을 보자 염치는 두 눈을 갑자기 동그랗게 치뜨며 너무 놀란 듯 다음 말조차 제대로 잇지를 못했다.

"염치! 부탁허이. 보는 사람 눈도 있으니 병천국의 고관(高官)답게 깨끗이 죽어주시게."

"으으악! 목 목천! 왜 그래 응 여 여보게! 제발 진정 좀 하시라고!"

목천이 빼어든 칼을 똑바로 겨누며 천천히 다시 걸어오자 염치는 완전히 사색으로 된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길이 없음을 안 염치는 재빨리 두 무릎을 바닥에 꿇더니 두 손을 모아 싹싹 빌어대며 목천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아이고! 목천! 제발 이 한 목숨 살려주시게. 자네와 나와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야."

"아이고, 살려주세요. 우리에겐 앞길이 구만리 같은 애들이 있다고요. 제발!"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 그대로 덩치가 큰 그의 아내 역시 남편 염치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칼을 든 목천에게 싹싹 빌어댔다. 그러자 목천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뽑아들었던 칼을 도로 거두어들이며 주위에 있는 부하들에게 큰소리로 명령했다.

"얘들아! 이들을 당장 묶어라!"

목천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부하 몇 명이 밧줄을 들고 달려들어 염치 내외를 대번에 꽁꽁 묶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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