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전통테마마을에 쏟은 열정 결실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전통테마마을에 쏟은 열정 결실
  • 연숙자 기자
  • 승인 2008.08.14 2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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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군 소전리 부녀회장 강귀순씨
남편 만나 정착… 제2의 고향 인연

충북도·청원군에 지원방안 요청

도·농 연계한 체험마을로 거듭나


"IMF로 인해 광주에서 장사하던 생활을 접고 있던 중 인터넷 동호회에서 지금의 남편을 알게 되었어요. 2004년 겨울, 지금의 남편을 만나러 두번째 소전에 왔다가 펑펑 내린 눈에 갇혀 주저앉게 되었죠."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도시 아지매 강귀순씨(47)가 강원북도라고 불리는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오지마을과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마치 60년대 신파극처럼 들린다. 아직도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소전리마을을 아는 사람이면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다.

"처음 방문했을 때 소전의 모습은 잊을 수 없어요. 다왔나 싶으면 끝이 없고 꼬불텅 길에 멀미까지하며 어렵게 마을에 도착했는데 옴팡한 마을 길가엔 노란 은행잎이 흩날리고 산자락엔 빨간 감이 주렁주렁 열려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찌든 도시생활에 지쳐있던 터라 소전의 자연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었다는 강씨는 이후 두번째 찾은 소전리에서 눈 때문에 오도가도 못하다 오지마을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서로가 재혼으로 출발한 시작은 쉬운 일만이 아니었다. 더구나 왁자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감성만으로 살기엔 현실은 늘 가난이 뒤따랐다. 소득이 없이 자급자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농촌생활은 도시생활에 익숙한 그녀에게 새로운 난제이기도 했다.

"농촌 생활은 막막하기만 했어요. 마을은 이쁘고 좋은데 벌이가 돼야 말이죠. 생활 기반이 없으니 젊은 사람은 객지로 나가고 없고 나이든 어른들만 마을에 남아 근근히 생활하는 정도였어요. 농촌에 적응을 못해 6개월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했어요. 그러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두번이나 보따리를 싸고 집에 갔었죠."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보따리 싸길 두번. 그럴 때마다 남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화하는 통에 마음을 돌이켜야 했다. "가는 날부터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는 며칠을 두고 이어졌어요. 전화 한통에도 배려하는 마음이 가득한 남편과 친정동생의 설득으로 다시 소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두번째 소전으로 돌아올 때 그녀는 달라졌다. 먹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농사짓던 땅에 원두막을 짓고 오지마을을 보고싶어하는 사람을 끌여들였다. 가장 먼저 함께 활동한 동호회원들이 방문해 주었다. 남편은 도와 군에 진정서를 냈다.

"남편은 인터넷으로 충북도지사와 군수에게 오지마을을 방문해 달라는 편지를 계속 띄웠어요. 이로 인해 당시 이원종 도지사와 오효진 청원군수가 방문해 마을을 살펴보고는 지원방안으로 전통테마마을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청원군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마을회관 건립과 한지체험장이 세워지며 오지마을의 장점을 살린 농촌체험마을로의 새로운 변모를 가져왔다. 마을 주민들은 역할을 나눠 한지체험과 야생화차만들기, 나물캐기, 생태안내 등 체험 행사를 진행하며 소득으로 연결했다. 연소득 150만원이나 될까 싶은 오지마을이 전통테마마을로 자리매김하며 경제적 자립을 진행해 나가게 된 것이다. 지난해부터는 소전리 부녀회장을 맡으며 마을 살림까지 시작해 마을엔 경제 소득과 외지인에겐 농촌의 향수를 안겨주며 도·농을 연계한 체험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마을 공동체가 진행되면서 일할 사람이 없어 걱정이라는 김씨는 마을 뒷산에 조성된 닥나무 단지를 활용해 한지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과 대청호와 연결된 포구에서 그림그리기대회나 작은 음악회를 여는게 꿈이다. 전통을 잇는 닥나무축제를 열어보겠다는 그녀의 다부진 꿈에서 미래는 꿈꾸는 자의 현실임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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