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코는 어디에
부처님 코는 어디에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7.1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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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체험 문화답사기
한 윤 경 <역사논술 지도교사>

정하동 마애불

청주 북쪽에는 큰 샘의 아래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정하동이라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요. 이 마을을 지나는 길옆으로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정하 마애비로자나불이 있는데 자칫 그냥 지나치기 쉽죠.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마애비로자나불이랍니다.

마애불이란 말 그대로 바위에 새긴 불상을 말해요. 전국 각지에 200여개의 마애불이 있는데, 주로 기운이 좋은 산 정상에 많이 세우죠. 이것은 하늘 가까운 최상의 위치에 모시고 동시에 백성의 삶터를 바라보도록 배려한 기복신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랍니다. 때로는 사람이 자주 다니는 길목에 세워 오고가는 사람들이 언제나 기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래서 마애불이 있는 곳은 주로 사람이 많이 다니던 옛길이라는 것을 추측 할 수 있죠.

비로자나불이란'두루 빛을 비추는 자'라는 뜻으로 진리의 부처님을 말합니다. 수인이라 하는 부처님의 손 모양을 보면 왼손의 검지를 세우고 오른손으로 감싸 쥔 지권인의 형태를 하고 있어요. 이는 부처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나타내는 것이죠. 즉 누구나 부처와 가까워질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에요.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하동 마애불은 전체 높이가 323m나 되고, 머리 높이만도 65m나 되죠. 두께가 약 1m나 되는 자연 암석에 머리와 상체는 돋을새김으로 조각하고 연화 좌대와 하체 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해 전체적인 조형미가 돋보입니다. 머리에는 두광을 나타내는 둥근 모자를 쓰고 있고 이마에는 백호를 끼웠던 구멍이 선명하게 남아 있지요. 또 어깨까지 닿을 듯한 큼직한 두 귀에 인자한 얼굴 모습은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죠. 목에는 삼도가 뚜렷이 남아 있고,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법의 또한 그림처럼 조각돼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 줍니다.

"어, 코는 어디로 갔나요."

오랜 세월에도 비교적 전체적인 모습이 잘 남아 있는 데 비해 유독 코가 뭉툭 잘려 있지요. 자연에 노출되어 있어 비바람에 씻긴 탓도 있겠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던 예전에는 여자들이 시집가 아들을 낳지 못하면 대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쫓겨나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어요. 그래서 시집을 가면 아들을 낳아야 하는 것이 여자의 숙명이었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성별을 결정할 수 없는 것이기에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네들도 많았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더라'하는 속설은 참 많았지요. 부처나 돌장승의 코를 몰래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도 꽤나 많이 알려진 것 중에 하나였어요. 그런 까닭에 전국 부처들의 코가 수난을 당한 것이구요.

아들, 딸 구별 없는 세상이 되어 다행히 부처의 코 수난 시대도 끝났지요. 모쪼록 천여 년의 세월동안 많은 행인들과 뭇 여인들의 희망이 되어준 마애비로자나불이 이제는 귀중한 문화재로 대접받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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