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을 송두리째 바꾼 손수건 한 장
내삶을 송두리째 바꾼 손수건 한 장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4.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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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김 남 균 <민주노총충북본부 비정규사업부장>

대학 새내기 시절 이맘때였다. 수업이 오후에 있어 느지막이 학교에 가던 날, 학교 정문주변으로 전경버스가 나래비(?)로 서있고, 그 옆으론 방패와 곤봉을 든 전경들이 또 나래비로 서있었다.

그 사이로 지나가는데 가방을 열란다. 헉, 웬 소지품 검사. 발끈한 나는 "당신들이 뭔데 남의 가방을 뒤지냐. 못 열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 말은 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잽싸게 전경 둘이서 내 팔을 붙들고 그중 한명이 내 가방을 낚아챘다. 가방을 열어본 전경 하나가 무언가 대단한 증거물을 발견했다는 듯 "이새끼, 운동권이네"하고 손수건을 꺼네든다. 그 손수건은 백두산 천지 연못정도가 그려져 있는 손수건이었다.

나에겐 아무 의미도 없는 학생회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나누어 준 그 손수건 하나가 '운동권'이라는 증거가 되었고 전경버스로 끌려가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한시간이나 무릎을 꿇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로 들어왔는데 맞은 것이 너무 분했다.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친구랑 학교 뒤쪽에 있는 식당으로가 막걸리를 들이부었다. 막걸리를 마셨으니 수업도 못 들어가고 그 길로 학교를 나서는데, 이게 웬걸 정문에선 한바탕 전투가 진행중이다.

이런 오로지 영문도 모른채 당했던 그 폭행에 대한 복수심이 타올랐고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게 내 손에는 쇠파이프가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날 죽어라 싸웠다. 낮에 날 때린 놈 한 대라도 쥐어박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경들 얼굴까지 확인하며 싸웠다. 그리고 그날, 저 멀리 서울에서 내 또래의 한 학생, 강경대가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다.

난 그날 이후 이른바 '운동권'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이 사십이 다 되어서도 노동운동에 몸담고 있다.

결국 그 손수건은 내 삶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20년 동안이나 나를 옭아맨 내인생의 올가미였던 셈이다. 다른 동료들이 사회와 사람의 암울한 현실에 자극받아 이런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그런 얘길 할 때면 속으로 난 '나는 코미디야, 난 손수건 땜에 이렇게 됐어' 하고 속웃음친다.

시간이 20년이 지나서 또 다른 나 같은 '코미디'가 생길란가 보다. 집회중에 마스크만 써도 근엄한 국가의 법으로 '이메가바이트' 정부께서 처벌하신 댄다.

아무 생각없이 집회장 주변에 마스크를 쓰고 지나가다가 범법자로 몰릴지 모를 어떤 가련한 사람의 우연이 20년전의 나처럼 인생이 바뀌는 결정적 계기가 될지도 모를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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