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분한 숙제
과분한 숙제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3.06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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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
이 규 정 <소설가>

삼월은 봄이 오는 길목이다. 그러니까 겨울잠에서 웅크리던 개구리가 떨어지는 입에서 기지개를 켜고, 그동안 땅속에 꽁꽁 얼어붙었던 만물들이 소생하려고 꿈틀거리는 달에서 초봄이나 다름없다. 거기에 농업으로 일상생활을 살아온 민족으로 한해 농사를 시작하는 달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기에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도 누구나 기다리고 반기며 맞이하는 춘삼월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올해로 맞이하는 춘삼월에서는 예년과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어설픈 글이라도 쓰겠다는 소망에서 풀어가기 힘겨운 숙제를 받았는데, 그 숙제가 바로 무심천의 지면에 부끄러운 글이나마 올려야한다는 것이다.

우주공간에 생존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한다. 거기에 만물에 으뜸으로 영장이라는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누구든 사람이라고 독보적인 존재로 무생물처럼 혼자서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만물이 생존하는 지구가 둥글듯이 얽히고설키는 인연으로 둥글둥글 뭉쳐서 살아야한다. 그런데 사람에게서도 선과 악이란 것이 엄연하게 존재하는 갈림길에서 사랑이란 품안에서 뿌듯한 삶을 살기도 하고 천륜마저 내팽개치는 독선으로 치유조차 못하는 상처에서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선과 악이라는 것이 그렇다. 일정부분이야 엄연하게 구분되겠지만, 어느 누구라도 줄자로 재듯이 어디서부터가 선이고 악이라고 가르지는 못한다. 그것이 또한 사람마다 생각하는 차이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에서 상처를 받기도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감격하기도 한다. 글이란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주 짤막한 글귀에서도 생각의 차이에 따라 감격하고 상처받는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고 조심해서 해야 할 말이 있고 글 또한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섣부른 글이나마 쓰고 싶다는 욕심으로 습작하는 사람이다. 거기에 요행이도 과분한 숙제에서 가장먼저 생각하는 것은, 자기가 한말은 자기가 먼저 듣고 자기가 쓴 글은 자기가 먼저 본다는 말이다. 그것이 또한 나로서는 풀어가기 힘겨운 숙제를 넙죽 받아놓고서야 분수를 알아차리는 나를 질책하는 책망에서다. 그렇지만 염치없는 욕심에서 선뜻 버리지도 못하는 행운이라 이렇게라도 인사드리며 얼굴은 내밀어야겠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의 어설픈 글이지만 어떻게든 노력해보겠다는 아량으로 보아주길 바라면서

<필진소개>

이규정씨는 지난 2005년 문학저널 소설 부문에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하고, 2007년 근로자예술제 대통령상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청주문인협회회원으로 문학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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