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와 봉하마을
청남대와 봉하마을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2.29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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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 규 호 <청주시 문화산업진흥재단>

시인 고은은 문의(文義)를 노래한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중략>

모든 것이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고은. 문의마을에 가서.1974>

제 17대 대통령이 나름대로 화려하고 장엄하게 취임하기 하루 전 대청호를 거느린 문의마을은 서툰 봄빛이 찬연하다.

'문(文)'과 '의(義)'라는 묵직한 마을 이름이 유토피아적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어느 시인의 해석이 그럴듯한 그 마을의 일요일, 청남대를 가고자 하는 관광객이 드물지 않다.

대통령 별장이라는 제한적이고 제왕적 공간 엿보기라는 이끌림으로 눈길을 끌었던 청남대는 상징이다.

참여정부 5년 내내 국민을 조바심에 가둬둔 탈 권위주의의 시금석이었던 청남대의 개방은 제한의 해체라는 상징성이 있다.

시인 고은의 노래처럼 문의마을의 눈은 삶과 죽음, 산과 들의 경계를 허물고 산과 들, 마을과 길의 구분을 덮는다.

그리고 눈은 세상을 낮고 가깝게 하면서 허무함을 미화시킨다.

다시 봉하마을, 최초의 전직 대통령 귀향이라는 이미지는 청남대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잘 가꿔진 수목과 화초, 그리고 전직 대통령들의 흔적으로만 남아 정물처럼 고즈넉한 청남대는 재미가 없다.

탈 권위의 상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냄새는 전혀 나지 않음으로써 밋밋하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이라는 결코 범상치 않은 5년의 임기를 마친 전임 대통령이 산다.

한 때 보수언론에 의해 '노무현 타운' 혹은 '노무현 궁'으로까지 비화되는 악의적 묘사가 있었고, 엄청난 나랏돈이 투입됐다는 식의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봉하마을은 그러나 그런 삐뚤어진 시각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숨결을 띠게 될 것이다.

문제는 처음의 이의제기에서 75억원으로 시작된 예산규모가 무려 495억원으로 키워나간 뒤 이런 오보를 나 몰라라 하는 언론의 자세에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귀향해 시민운동을 하겠다고 공언을 했으며, 봉하마을이 속해 있는 경남 김해시는 그곳을 체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감을 통해 느끼면서 만족도를 배가하는 체험형관광은 이미 트랜드가 된지 오래다. 더군다나 세상과 사람은 사회 참여를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의식에 새롭게 눈을 뜨고 있으니, 이런 경남 김해시의 관광전략은 일단 유효할 것이다.

신·구 대통령의 이·취임이 있기 하루전의 일요일, 문의마을에는 눈이 오지 않았다. 이에따라 경계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는 사이, 사람들은 청남대를 관광하기 위해 제법 많이 모여 있다.

늘 걱정거리인 청남대의 관광지로써의 매력 감소를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 사람냄새를 풍기게 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잘잘못을 초월해 한때 국정의 최고 책임자들을 모셔 그분들과 막걸리를 나누며, 국가 원로로서의 덕담을 듣는 것에 백성은 더 열광할 것이다.

그리하여 청남대를 단순히 박제화하지 않고 새 숨결을 불어 넣을 희망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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