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팠던 추억
가슴 아팠던 추억
  • 충청타임즈
  • 승인 2008.01.08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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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발언대
신 윤 영 <진천 한천초등학교 교사>

매일 쫒기듯이 바쁘게 지내다가 잠시 눈을 감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내가 교단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를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나의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했던 경민이가 떠오른다.

3학년 답지 않게 큰 키와 큰 덩치, 단추구멍만한 눈과 항상 벌리고 있는 입. 글을 읽고 쓰기는커녕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상이 아닌 아이였다.

복도 앞에 경민이가 본 변을 치우면서 내 품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실수할 모습을 걱정하며 가슴 아팠다.

아무도 없는 남의 교실의 창문을 넘어가 남의 주머니를 뒤지는 경민이를 보며 제대로 된 도덕관념을 가르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에 가슴 아팠다. 신체 검사날 시력검사를 할 때 끝이 붉은 막대기 끝이 나비를 가리켜도, 새를 가리켜도 모두 어눌한 발음으로 '밥'이라고만 할 때도 안쓰러움에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이 자기를 조금이라도 해롭게 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억'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며 자기의 두 팔을 엇갈려 수갑을 채우는 시늉을 할 때도 가슴이 아팠다. 경찰인 아빠가 수갑채우는 시늉을 하시는 걸 본 모양이다.

급식소에만 가면 마냥 좋아하는 천진난만한 웃음에도 가슴이 아팠다. 내가 노력해도 도와 줄 수 없는 일들, 경민이가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나를 아프게 했다.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었다. 어머니가 아파 경민이를 데리고 갈 수 없어 소풍을 못 보내겠다고 하셨다. 내가 데리고 가겠다고 하고 경민이와 버스에 나란히 앉았다. 경민이는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경민이는 계속 탄성을 지르며 그 당시 작은 키와 마른 체구의 나를 막 끌고 다녔다.

다른 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소풍을 왔으므로 경민이를 잃어버릴까봐 있는 힘껏 손을 잡고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경민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놀이기구를 타는 곳이었다. 평소에 무서워서 놀이기구가 질색이던 나는 큰 용기를 내어 경민이와 우주 비행기를 탔다.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주 비행기 안에서 난 무서워 손잡이를 꼭 잡았지만 경민이는 내 옆에서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다.

범퍼카를 타면서 이리 저리 아이들의 차와 부딪치면서도 그 행복한 탄성은 멈추지 않았다. 아마 한 번도 이런 유원지에 와 본적이 없었을 것이다. 한 번도 이런 놀이기구를 탄 적이 없었을 것이다.

그날 경민이의 표정은 내가 본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표정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나의 가슴에 남아있다.

경민이가 지금 이 순간 어디에선가 행복한 표정으로 웃으며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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