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사랑
못다한 사랑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2.26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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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목련
김 혜 식 <수필가>

며칠 전 시골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일이다. 차 올 시간이 멀어 신문을 펼쳤다.

그때였다. 대합실 안에서 갑자기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살펴보니 남루한 옷차림의 노인 한 분이 의자 앉아 슬피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비탄에 잠긴 노인'의 그림과 흡사했다. 잔뜩 웅크린 채 꼭 쥔 두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통탄의 슬픔을 자아내는 그림 속 노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그 노인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자판기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뽑아 그 분께 건네었다. 그러자 그는 웅크렸던 자세를 가까스로 고치며 뼈만 남은 앙상한 손으로 내가 건넨 일회용 컵을 선뜻 받아들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그는 다시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곁에서 이를 지켜본 어느 중년 신사 한 분이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달래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이번엔 내가 그분을 다시 위로하였다.

"할아버지,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나 너무 상심 마세요. 행선지가 어딘지 혹시 차 시간 놓치시는 것은 아닌지요"

그러자 노인은 나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든 듯 눈물범벅인 얼굴을 들어 대합실 벽시계를 바라본다. 그러더니 내게 물 한 컵을 원했다. 나는 얼른 근처 편의점에서 생수를 한 병 샀다. 그것을 단숨에 받아 마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사연인즉 치매를 앓던 자신의 부인이 오늘 사망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부터 시골 5일장을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라고 한다. 고향에 아내를 두고 늘 바람처럼 시골 장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팔곤 하였다. 어느 땐 고향에 있는 처자식도 까맣게 잊은 채 노름에 빠지는 날도 잦았다고 했다.

그동안 층층시하 시부모님을 공경하며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온 자신의 아내였다고 했다. 그날도 그가 집 나온 지 2년여 만에 고향집을 찾아 가는 도중에 아내의 갑작스런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죽음을 접하며 비로소 그는 못다 한 사랑의 회한에 몸부림치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젊어서부터 오늘날까지 아내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고 했다. 청각 장애인이었던 아내였기에 더욱 의사소통이 힘들었다고 한다.

그런 아내를 위해 자신이 그 무엇도 제대로 해준 게 없는 듯하여 더욱 후회가 앞선다고 했다. 그날도 노름판에서 장날에 번 돈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가 돼 고향집으로 향하던 길이었다고 했다. 비보를 접하고도 단숨에 달려갈 택시비 한 푼 없는 자신이 한탄스러워 더욱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다.

나는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그 노인 손에 쥐어줬다. 그리곤 한시라도 빨리 고향집으로 달려가 아내의 마지막 길을 지켜보라고 일렀다. 노인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살아가면서 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한테 미처 못다 한 일들이 무엇인가를 문득 생각해 보았다. 살림형편이 나아지면 해야지, 혹은 바쁘다는 핑계로 주위 사람들한테 소홀히 대한 적은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어본다. 지난날 되돌아보니 사람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게 부지기수다. 2008년도 새해엔 올해 못다 한 사랑을 가까운 사람들한테 베풀며 살아야 할까 보다. 이것으로 보아 아마도 '있을 때 잘해' 라는 어느 유행가가 그냥 생긴 게 아닌 성 싶다. 그 노랠 가만히 입속으로 흥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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