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이웃들과 화투를 치는 일이 자주 있다. 이 나이에 무위도식이나 다름없는 일이어서 대놓고 자랑질할 것도 못 되는 화투 놀이지만 그래도 늙은이들이 시간 보내는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싶다.
유산소 운동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엄포를 주는 보건소 언니 말이 아니어도 끊임없이 손을 움직여야 하고 짝을 맞춰야 하고 계산도 해야 하고 돈도 맞게 지급해야 하고….
사실 너나 없이 더듬거릴 때가 있다.
그러면 옆에서 초등학교 다시 입학하라는 둥, 초등학교도 뒷문으로 나왔느냐는 둥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 나무란다는 둥 오십 보 백 보라는 둥 속담까지 불러내어 통박 주는 것까지 즐겁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유산소 운동이다.
숨어서 할 일도 아니고 흉도 아니다.
차로 25분이나 걸리는 거리에 있는 박 여사네 집인데도 허물없이 드나들기 좋은 이유도 있고 그만그만한 실력을 갖춘 패거리가 있어 더욱 좋다.
쿵짝이 맞는다고 할까, 화투를 좋아해서 자연스레 화투 방이 되고 나는 노름쟁이 넘버 원으로 통한다. 내가 출정해야 판이 어울려지니 틀린 말은 아니다.
박 여사는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챙겨 내놓으면서 지난 일요일에 다녀간 아들 자랑부터 시작이다.
“열심히 치라네, 아프다는 소리만 들리지 않으면 주전부리는 얼마든지 공수해 주겠대”
“아이구, 박 여사는 복이여, 그런 효자가 요즘 어디 있으요.”
옆에 이 여사도 설레발에 낀다.
“아까 전화 온 것 들었잖뉴? 글쎄 돈 다 잃었다 했더니, 우리 막냇사위는
노름 돈 모자라면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혀유, 오두막 한 칸 있는 것 팔아서라도 대줄 테니 안심하고 열심히 치라고 하잖뉴.”
`그려, 그려, 그런 사위 약에 써야겠구먼, 이 여사 팔자 늘어졌어, 어쩌구 맞장구치던 송 여사도 지지 않고 아들 자랑을 펼친다.
“우리 아들은 일요일마다 내려오잖여? 근질거리는 데 다 긁어주는기여, 밭갈이며 힘든 일릴랑 모두 제가 한다면서 젊어서 고생 많았으니 이제 어미는 편히 쉬어야 헌대여, 엄마밖에 몰러유, 날마다 전화를 몇 번씩 해대지, 회사 그만두면 내려와 어미랑 살겠대여”
“그려그려 이 사람들 모두 자식 농사는 대짜로 지었어, 부러워 죽겠단 말이지.
요즘 세상에 늙은 어미 노름하라고 부추기는 효자 아들들 둬서 우리는 모두 행복한 겨”
화투가 끝나고 일어설 때가 되었다.
모두 돈을 세어 본다. 딴 돈을 내놓기 위해서다.
일만 원 이쪽저쪽의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노름판 루울은 딴 돈은 모두 내놓기이다.
혹자는 한 푼 수입도 잡지 않으면 무슨 재미로 화투를 하느냐고 김빠진 맥주 맛 아니냐 되묻기도 하지만 그럴 땐 이렇게 반문한다.
땄을 때의 부담감이나 단돈 몇 푼이라도 잃었을 때의 잡치는 기분을 갖지 않는 것이 얼마나 홀가분한 것인지 알게 된다고,
돈 따는 욕심의 희열보다 함께 있어도 실증이 나지않는 친구끼리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만의 루울 때문에 아들딸들의 절대적인 호응도 얻어내는 것이리라.
우리에게 화투는 유산소 운동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