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를 패자로 만들지 말라
대책위를 패자로 만들지 말라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2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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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권 혁 두<부국장(보은·영동·옥천)>

지난 3월 육군종합행정학교의 영동군 이전이 확정된 후 정구복 영동군수는 매곡면민들에게 각별한 감사를 표했다.

영동군 매곡면은 지난 2002년 화학무기폐기시설이 설치된 데 이어, 폐폭탄과 탄약 폐기시설 가동까지 앞두고 있는 국방부의 '뒷마당'이다. 군사시설에 반대한 군의원 등 주민 대표들이 경부고속도로 점거시위로 구속되는 등 시련을 겪었던 곳이고, 아직도 찬반으로 갈렸던 주민들의 갈등이 앙금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행정학교 유치후 정 군수가 특별히 매곡면을 언급한 것은 군사시설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면민들이 영동군의 행정학교 유치 과정을 암묵적으로 뒷받침해 준 데 대한 답례로 풀이된다. 당시 군사교육시설 범군민유치위는 "시설유치가 안 되면 화학무기 폐기시설과 고폭탄처리시설 철거투쟁도 불사하겠다"며 국방부를 압박했다. 물론 군민들이 삭발까지 하며 똘똘 뭉쳐 집요한 투쟁을 벌인 것이 행정학교 유치를 성사시킨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동군이 뒤늦게 유치전에 가세하고도 성과를 얻은 것은 영동군과 소송전까지 벌이며 잔뜩 날을 세운 '매곡면고폭탄처리시설반대대책위'라는 막강한 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책위의 묵직한 존재감이 국방부를 고민하게 하고 종국에는 함께 옮겨다녀야 할 종합행정학교와 중앙군사학교를 쪼개 두 곳에 배분하게 한 동인이 됐다. 사전에 군사학교유치범군민위가 협조를 요청했을 때 대책위는 "고폭탄시설 반대는 불변이지만, 행정학교 유치에 장애가 되는 행동은 자제하겠다"고 했고 끝까지 이 약속을 지켰다.

반대대책위가 지난 2005년 영동군을 상대로 제기한 고폭탄시설 신고수리 취소소송이 최근 고법에서도 기각됐다. 대책위는 대법원에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원의 법리적 판단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대책위가 결과가 뻔한 대법원까지 피곤하고 무미한 노정을 계속해야 하는지는 짚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 됐다. 답안부터 말한다면 이제는 종결을 지어야 할 때이고, 소송 당사자인 군청이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비록 지역의 무관심속에서 승산없는 법정다툼에 매달리고 있지만 대책위의 대응논거는 여전히 온당하고, 군은 이 사단을 초래한 장본인으로서 타래를 풀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화학무기폐기시설 사태때 주민들은 그야말로 유혈시위를 벌인 끝에 국방부로부터 3581억원 상당의 보상성 국책사업 지원을 얻어냈다. 그러나 155억여원이 띄엄띄엄 지원되고는 흐지부지 돼버렸다. 국방부가 지역을 우롱한 꼴이 됐지만, 군은 3년 후 반대여론을 묵살하고 고폭탄처리시설까지 수용했다. 보상비로 50억원을, 그것도 구걸하다시피 얻어냈다. 당시 군은 국방부의 하수인이 돼 주민들의 생존권을 헐값에 팔아먹었다는 항변을 듣고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군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책위와 접촉하고 해법을 모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법으로부터도 버림받은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명분 하나로 버티고 있는 대책위의 얼어붙은 가슴을 녹이려면 통상의 행정이 아닌, 특단의 관심과 배려가 따라야 한다.

대법원까지 가서 대책위를 꺾는다고 군이 승자가 되지는 않는다. 군정사에 부끄러운 오점을 남기게 되고, 매곡면민 사이에 패인 골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

정구복 군수는 후보 시절 영동군의 고폭탄처리시설 승인을 민의를 무시한 일방행정으로 규정하고, 당선되면 여론을 물어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했다. 그 약속을 일부라도 실천하려면 대책위에 소송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줘야 한다.

대책위를 대법원까지 끌고가 패자로 만든다면, 군수는 물론 군민 모두가 패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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