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부드러운 직선’은 없다
세상에 ‘부드러운 직선’은 없다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10.19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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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의 문학칼럼
이 석 우 <문학평론가>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놓았는가

-'산맥과 파도' 전문-

경물(景物)에 대한 마음의 움직임이 격정적이다.
강직한 정신의 붓으로 물상을 지어놓고 눈발에 얼어 붙을 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고 선언한다.
"모질고 험하게 살아온 당신"은 불특정 다수나 혹은 자기 자신의 지시물이다. 세파속에서 정신의 향기를 잃지 않고 삶의 능선에 꼿꼿한 아름다움의 지석을 남겨야 마땅했을 우리들이다.

이 시는 눈치나 힐끔거리던 자들을 겨냥하고 있다. 유려해 보이는 그 시편 속에서 예리한 화살촉을 발견하지 못한 독자는 가슴에 불을 맞고도 웃기만 한다. 그것은 오독(誤讀)의 즐거움이다.

정민은 '한시 미학 산책'에서 오독도 아름답다고 했다. 시인이 시밭에 묻어둔 정신의 향기를 다 캐지 못했다고 자책할 일은 아니다. 시인이 너무 깊게 이랑을 판 탓도 있으리라. 그래서 잡초들의 풋풋한 향기를 얼결에 곁들여 마실 행운도 온다.

어찌 능선이 험한 산 만이 아름다울까 해질녘 우암산을 올라 봉명동을 더 물러서서 가까이 혹은 멀리 그어 놓은 습곡들의 세부 그 죽음보다 평화로운 산들을 보라. 거기 아름다운 여인네가 감추고 사는 무수한 곡선이 있다. 풀벌레의 울음과 뭇짐승들의 발자국으로 보듬어진 무수한 곡선들의 중첩 그 어디쯤 알맞게 술기운이 도는 저녁 해는 떨어진다.

산이 꼿꼿해서 아름다운 것은 도종환의 심상이 그래서 그렇다. 자연의 질서 중 순순함이 아닌 곳에 삶의 질서를 일치시킨다. 모난 바위 너절이나 고사목의 썩음을 덮고 봄으로 향하는 겨울눈의 포근함을 그는 아직 보려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이 세상의 어둠 속을 파고 드는 뱀같은 곡선들에 대한 경멸과 흐트러지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시정신의 대쪽 같음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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