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아동’ 대책마련 신중해야
‘유령 아동’ 대책마련 신중해야
  • 하성진 기자
  • 승인 2023.07.0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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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하성진 부장(취재팀)
하성진 부장(취재팀)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출생 미신고 영아' 전수 조사가 한창이다.

전주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영아살해·유기 사례는 매일같이 눈덩이처럼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6일 오후 2시 기준 전국 시·도경찰청에서 `출생 미신고 영아' 사건 867건이 접수돼 780건(사망 11건·소재 불명 677건·소재 확인 92건)을 수사 중이다.

충북도 하루가 다르게 사례가 늘고 있다. 도내 지자체가 수사 의뢰한 사례는 총 46건이다.

46건 가운데 11건은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아 종결 처리됐다. 종결 처리된 건은 출산 이후 병원에서 숨지거나 출생신고를 늦게 한 경우 등이다.

나머지 35건 중 34건은 기초조사 중이다. 대다수가 베이비박스 유기, 해외 출국, 친모·친부 소재 불명이다.

1건은 30대 친모가 병원에서 남아를 출산한 뒤 인터넷을 통해 만난 제삼자에게 아기를 넘긴 사례로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런 통계는 충북도와 도내 11개 지자체가 보건복지부 통보를 받아 1차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하지만 감사원이 충북에 79건을 통보하면서 출생 미신고 영아 사례는 늘 것으로 보인다.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 이후 연일 유사한 사건들이 보고되고 있다. 경제적 이유 등으로 영아를 살해하거나 방치한 부모가 줄이어 수사 대상에 올랐는데 대부분은 아이의 친모다. 영아살해·유기 사건 피의자 10명 중 8명은 여성이다.

국민의힘 정우택 국회부의장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3~2021년 영아살해·유기 피의자 447명 중 여성이 369명(82.5%), 남성은 78명(17.5%)이었다.

임신의 책임은 남녀 모두에게 있지만 출산과 그 이후 양육에 대한 부담은 대체로 여성의 몫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행인 것은 `유령 영아'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는 점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부모가 고의로 출생신고를 누락해 `유령 아동'이 생기지 않도록 의료기관이 출생 정보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지방자치단체에 통보한다. 지자체는 이를 확인하고 일정 기간 신고가 되지 않으면 직권으로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태어난 모든 아이가 등록되는 보편적 출생신고를 위한 출생통보제는 인권단체 등이 수년 전부터 요구해왔다.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해 법무부가 2021년 6월 법안을 발의했지만 진척은 더뎠다.

그러다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지난 8년간 태어났지만 기록되지 않은 영유아가 2000명 넘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부와 여야는 속전속결로 상임위를 거쳐 최근 본회의까지 통과했다.

이로써 유령 아동의 비극을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생겼다.

이 제도로만 완벽할 수는 없다. 출생통보제가 담지 못한 사각지대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출산 기록이 남는 것을 원치 않는 산모들의 `병원 밖 출산'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보호출산제' 도입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찬반 양론이 팽팽하다.

전문가들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대체 입법 추진도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아 관련 범죄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서 1차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제도를 구축하고 출산 후에는 양육 또는 입양으로 이어지도록 사회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더이상의 비극이 생기는 일이 없도록 정부의 세심한 대책 마련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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