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정승 이원익'에게서 청렴을 배우다
`오리정승 이원익'에게서 청렴을 배우다
  • 이유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 승인 2023.07.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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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광장
이유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이유진 청주오창호수도서관 주무관

 

지난 6월 17일 청주상당도서관에서는 유아~초등학년과 가족을 대상으로 `오리정승 이원익'을 주제로 한 청렴인형극을 성황리에 마쳤다.

어린 친구들에게 청백리에 대한 인물 인형극을 통해 쉽고 재미나게 청렴에 대한 기본정신을 알게 하고 싶어 기획하게 되었다.

또한 오리정승 이원익에 대한 공연을 보면서 기고문으로도 소개하고 싶어졌다.

`오리정승 이원익'은 조선 시대 백성들에게 친근했던 정승이다. 오리라는 호 때문에 백성들은 그를 오리 정승이라고 부르며 즐거워했다고 한다. 한나라의 정승을 오리라고 동물에 빗대어 놀릴 만큼 백성들이 친근함을 표시한 것이다. 이원익의 성품이 어떠했는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평가가 있다.

인조반정 이후 영의정을 맡게 된 이원익에게 인조는 광해군 시절 부정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어느 날 한 세도가의 소실처럼 보이는 여인이 구슬이 박힌 보석 신발을 들고 와 자기 주인을 살려달라고 빌었고 그것을 본 이원익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고 한다.

“신하가 이 같은 호사스러운 물건을 사용하였으니 광해군이 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겠다. 백성들이 굶어 죽는 마당에 소실에게 이런 사치스러운 신발을 신긴 사람이 살아난다면 죽을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원익은 그 여인을 돌려보내고 죄인에게 큰 벌을 내렸다고 한다. 백성들에게는 `오리정승'으로 불리며 친근하게 대했던 이원익이었지만 부정한 관리들에게는 칼날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백성들이 굶주려 있을 때 이원익은 백성들에게 뽕나무를 심게 하고 누에치기를 권장하여 가난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다섯 번이나 영의정을 재임했으면서도 초라한 초가에서 스스로 농사 짓고 돗자리를 만들어 팔아 생활하였다고 한다.

청렴한 삶, 그 자체였던 오리정승 이원익. 가난한 백성들의 생계를 돕고 부정한 관리들을 엄단했던 재상을 어떤 백성이 미워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청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에게 요구되어 온 덕목이다. 청렴한 정치가나 공직자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칭송받지만 부패한 지도자와 탐관오리는 역사 속에서 영원히 비난받는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현재의 문제를 과거에서 답을 찾고자 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같거나 비슷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과거의 역사나 위인들의 모습에서 팁을 얻고자 한다.

이처럼 현재의 청렴의 자세를 과거 이원익과 같은 역사적 인물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자 한다.

답은 아주 간단하다고 생각한다. `이원익이라고 유혹이 없었을까?', `이원익이라고 그 권세를 이용하여 나 위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까?'

현재의 우리는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내로남불', 그걸 반대로 나에게는 엄격한 자세를 이원익을 통해 다시 한 번 배워본다면 우리 모두에게 청렴은 한발 더 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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