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모든 것들이 활기 넘치는 봄이다. 앞산에 나무들도 초록 팔을 힘껏 뻗고 있다. 싱그럽고 아름답다. 그런데 우리 마당에 머리는 하얗고 허리 구부정한 어르신이 걸어다닌다. 저 어르신이 40년 전 그 남자가 맞나 싶다. 소위계급장이 붙은 군복이 잘 어울리는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었다. 키는 180, 군살 없이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였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남자와 얼마간은 새콤달콤 즐겁고 행복했다. 4월처럼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아름다웠었다. 인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인가 했다. 사람은 자기가 처해있는 환경이 전부인 줄 알고 살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인 것 같다. 결혼은 환상도 꿈도 달달한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시간이 나는 없고 나와 상관없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또 그런 날도 있었기에 지금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박완서 선생님은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 라고 하셨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는 말씀에 나도 한 표를 찍었다. 내가 가장 청춘답게 살아갈 나이에 나는 상가 건물을 지었고 외환위기를 만났다. 건축업자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내 가정이 다 넘어갈 뻔했다. 시어른 모시고 아이들은 커지는데 은행이자 때문에 숨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 고달픔을 숨기려고 남몰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제 겨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리 젊음이 좋다 해도 나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돌이켜 보는 것조차도 거절하고 싶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한다. 물처럼 흘러가라는 뜻도 있겠지만 나는 아무 맛이 나지 않는 맹물에 중심을 두고 싶다. 이 말을 빌리자면 이제는 새콤달콤한 음료수보다 톡 쏘는 맛을 내는 사이다, 콜라보다 맑은 맛이 나는 생수가 좋다는 뜻이겠다. 아무 맛이 나지 않지만 가장 맛있는 생수야말로 생명수다.
이제는 어떤 유혹이 손짓해도 뿌리칠 수 있다. 경쟁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의지와 자존감이 있다. 엄청 탐나는 것도 부러운 것도 없다. 무겁게 입고 있었던 책임감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가벼워지는 자유를 즐기며 마당에 나무와 꽃들에게 조용히 이야기하는 노인으로 늙어가는 삶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부쟁(不爭)은 물 흐르듯 하는 순리, 구태여 싸울 이유조차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박경리 선생님도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고 말씀하셨다.
가끔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싶지만 물맛을 아는 지금이 좋다. 시절은 싱그러운 봄, 내 인생은 맹물의 맛을 아는 아름다운 시간을 지나가고 있다.
맹물은 다른 어떤 맛을 감미하지 않고 나만으로도 충분하다. 마당에 서성이는 저 남자, 남자와 함께 있는 나도 한때는 이 봄의 나무처럼 싱그러웠다. 이제는 달콤함도 톡 쏘는 맛도 나지 않지만 지금 시원한 생수로 서로 목마름을 해결해주고 있다. 깨끗하고 맑은 맹물의 맛을 아는 데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도 두 분의 작가 선생님 말씀을 따라 해본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아 늙으니 이렇게 편한 것을.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