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빚고, 손으로 읽는 그릇
손으로 빚고, 손으로 읽는 그릇
  •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 승인 2023.04.0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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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문화유산의 이야기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박소연 충북문화재연구원 교육활용팀장

 

조선의 아름다운 백자를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서울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보와 보물을 비롯해 총 185점의 백자가 전시되어 있는데, 평소에 보기 힘든 해외 및 개인 소장품도 많이 출품되어 앞으로 다시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전시’라는 소문도 들려온다. 왕실부터 서민까지, 중앙에서 지방까지 아우르는 조선의 백자를 모두 볼 수 있는데, 그 형태와 그림, 안료, 제작 기법 등에서 매우 다양했던 조선 백자에 대해 새롭게 이해할 기회이다. 필자도 시간을 내어 방문해보았는데, 전시 초입부터 입이 떡 벌어지게 놀라며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두운 배경 속에서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수십 점의 백자들. 그것도 이름난 명품을 이렇게 한 곳에서 볼 수 있다니!  

우리는 보통 ‘백자’라고 하면 머릿속에 새하얀 자기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다양한 재료로 아름답게 그림을 그리고 색깔을 칠한 작품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동안 필자는 그림이 있는 백자를 보더라도 장식했다고 느꼈을 뿐, ‘그림을 그렸다’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보며 저 하얀 백자가 일종의 스케치북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것은 백자를 네 방향에서 모두 볼 수 있도록 유리로 된 입체 전시장 속에 넣어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전시된 유물을 보는 방법은 아주 특별한 경우 일부를 제외하면, 벽면에 붙어있는 전시장 안의 작품을 앞에서만 바라다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 전시에서는 전시장을 한 바퀴 돌며 백자의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 불렀어?’ 하는 포즈로 귀엽게 돌아보는 소녀의 주변에 두 명의 인물이 더 있다는 것이나, 매화나무 가지가 뒤에서 뻗어 나와 앞면으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도 구경하며 새롭게 알게 되었다. 또 평소라면 알 길이 없는, 전시품이 쓰러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한 특이한 지지대도 구경할 수 있었다. 
 
사면 입체장을 활용한 이 전시처럼,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볼 방법이 없다. 백번 말로 설명해도 직접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 그런데 이것은 누군가에게는 와닿지 않는 소리이다. 바로 시각장애인 말이다. 물론 과거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시각장애인들에게 문화유산은 이해하기 어려운 먼 이야기이다. 
 
조선시대 왕실부터 사대부, 그리고 서민들이 그러했듯이, 현재의 우리도 매일 삼시 세끼를 먹을 때마다 일상적으로 그릇을 사용한다. 물론 사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등으로 만들어진 그릇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실생활에서 끊임없이 그릇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시각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똑같다. 
그래서 우리 연구원에서는 충청북도의 지원을 받아 시각장애인들이 문화유산에 대해 조금 더 친숙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매일 쓰는 그릇 이야기를 점자책으로 만들었다. 과거 인간이 불을 발견한 뒤, 흙을 빚어 불에 구워 만들어낸 빗살무늬 토기에서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이런 그릇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시각장애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편한 문체와 점화를 곁들여 제작하였으며, 오디오북으로 들을 수도 있다. 물론 그래도, 문화유산을 평소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아직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릇, 흙을 다룬 지혜의 역사』 책과 함께 유물 모형을 들고 시각장애인에게 직접 찾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릇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손끝으로 유물을 만지다 보면 머릿속에 쉽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자꾸 많아지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재미있는 전시도 관람하며 각자의 소감을 시시콜콜 나눌 수 있는 날이 빨리 찾아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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