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가 노회찬의 좌절
선동가 노회찬의 좌절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9.1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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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한 덕 현<편집국장>

민노당 노회찬의 중도하차를 바라 보는 시각은 복잡하다. 이미 예견됐다고도 하고 이변이라고도 한다. 특이하게도 그가 당내 경선에서 3위에 그쳤다는 소식에 대체로 당원들은 전자 쪽에, 일반인들은 후자 쪽에 비중을 둔다. 이는 결국 둘 다 맞는 얘기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당내에서 벌어지는 사후 평가에 더 신뢰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실제로 노회찬이 예비 경선에서 고배를 마신 근본적 이유는 당내 역학관계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노동운동의 전력과 계파별 힘의구조, 그리고 당원 구성의 원초적 스펙트럼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막판 심상정 후보에게 뒤집기를 당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대중적 인기도에서 수위를 달리던 그가 경선의 무대 뒤로 내려앉게 된 것은 분명 이변이다. 이런 상황을 놓고 그의 화려한 수사(修辭)가 또 어떤 어록을 만들어낼 지 지켜볼 일이다.

아닌게 아니라 노회찬의 좌절을 이변으로 여기는 일반인들의 관심은 대개 그의 뛰어난 말솜씨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동안의 활동에서 워낙 '말'이 상대와의 비교우위에 서다보니 오히려 손해를 봤다는 진단을 내린다. 안 그래도 기상천외한 화법으로 대중의 속을 후련하게 긁어주던 그였지만, 최근에는 역풍을 우려해 많이 조심했던 게 사실이다.

2002년 지방선거와 대선, 그리고 2004년 17대 총선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활동할 당시, 일약 민노당을 원내로 진출시킨 일등공신 중에 하나는 바로 그의 입이었다. 열었다 하면 말 그대로 어록으로 기록될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한몸에 받았지만 조직의 리더, 더 나아가 국가의 최고 통치가가 되겠다고 나선 상황에선 그 '말'이 되레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의식한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 잘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도마위에 오를 수 있다.

얘기는 다소 빗나가지만 얼마전 통합민주신당의 예비후보 방송토론회에서 유시민이 정동영을 작심한 듯 패대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의 반응도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방송에서는 유시민의 화려한 '말'이 단연 분위기를 압도했지만, 시중의 평가는 달랐다. 오히려 점수를 깎인 측면이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적어도 지도자가 되겠다는 것에 국민들은 '말' 즉 달변(達辯) 이상의 그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치적 도량이나 품성이 될 수도 있고, 상대를 매료시키거나 휘어잡는 인간적 체취일 수도 있다. 말이 어눌하거나 입 다물고 있어도 알아서 권위가 조성되는 그런 카리스마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말 잘하는 것을 기준해 이른바 시험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박찬종이나 홍사덕, 장기표 이런 사람들은 이미 대통령이 되고도 남았다.

그래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정치인이 말까지 잘 하면 그보다 더 좋은 조건도 없다. 정치의 본질이 원래 대중을 파고드는 선동적 역량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말 잘하는 정치인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하지만 선동은 독재와 함께 민주주의의 2대 적으로 꼽힌다. 더구나 외형으로 나타나는 독재보다도 아무 생각없이 환호하다가 어 하고 당하는 '선동'이야말로 더 무섭다. 웅변가 히틀러와 그를 대신해 대중적 인기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궤펠스의 '천재적 선동'이 남긴 결과는 맹목적 포퓰리즘의 만연과 국민의 우민화 그리고 국가 패망이었다.

흥미롭게도 노회찬은 자신의 선거 홍보물에 스스로를 '탁월한 선전, 선동가'라고 명명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앞의 선동가와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본인의 뛰어난 화술과 달변을 의식한 것임엔 틀림없다. 때문에 그의 꿈은 비록 좌절됐지만 평소 본인이 강조한 휴매니즘의 선동가를 잠시 무대에서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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