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부상의 불편함
효부상의 불편함
  •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 승인 2022.11.2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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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談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박미영 청주시가족센터장

 

나이 오십을 지천명이라고 한다.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의미다. 필자도 지천명을 지나 어느새 중반에 이르니 가끔은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된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인간으로서의 삶 등 나 자신이 삶을 살아 온 기억 말이다. 물론 각각의 역할에 따른 모든 삶이 더해진 것이 `나'의 삶이지만, 조금 더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구분하고 싶은 것은 얼마나 자기 개발과 성장을 이루며 꿈을 향해 살아왔는지에 대한 발자취를 들춰보고 싶은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인생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가던 어느 날,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효부상 추천을 하라는 문서를 접하고 센터 이용자 가정 중 한 가정을 선택해 담당 직원이 공적조서를 준비해 왔다. 타국에서 한국으로 결혼해 온 후보자는 장애가 있는 남편과 거동이 안되는 시어머니, 자녀들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강한 여성이다. 남편은 노동 시장에 진출하기 어려워 소득이 거의 없고, 시어머니는 와상 노인으로 요양원에 잠시 모시다가 비용이 너무 부담스러워 다시 집으로 모셔왔다고 한다. 시어머니에 대한 모든 수발을 며느리인 이 여성이 홀로 감당하며 틈틈이 부업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어린 자녀들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다.

이 여인의 삶은 쉬이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분명하다. 이 여성은`효부상' 후보자로서 부족함이 없다. 아니 효부란 시어머니를 섬기는 정성이 지극한 며느리를 뜻하니 말이니 효부상을 받아 마땅하다. 어디 시어머니 뿐이랴. 남편과 어린 아이들까지 홀로 부양하며 정성을 다하니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필자는 이 추천서를 접하며 씁쓸함이 먼저 다가왔다. 이 여성의 삶이 너무나 곤고할 뿐만 아니라 한 여성의 헌신을 담보로 살아가는 가족을 효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돌봄이 필요한 가족들을 한 여인에게 맡긴 채 가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불편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사회의 돌봄 책임을 슬쩍 외면하며, 돌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 가족을 화려한 미사여구와 잠깐의 관심, 작은 포상과 박수로 구성된 `효부상'의 이름으로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편함이다. 물론 효자나 효녀상도 마찬가지다. `효'란 부모를 봉양하고 마음 편히 모시는 일이다. 어렵고 힘든 현실을 무조건 참으며, 불굴의 의지를 발휘하여 온 가족을 부양하며 그러한 삶에 불만을 품지도 아니하고 자신의 건강과 안위보다는 가족만을 위한 철저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은 결단코 아닐 것이다.

돌봄의 일차적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요보호 가족을 돌보기 힘든 여건이라면 국가는 마땅히 이들을 돌볼 책임이 있다. 이런저런 구실로 수급 자격을 박탈하고 사회적 돌봄의 문턱을 높여 버린 사회는 그저 무책임할 뿐이다. 차가운 현실 앞에 굴하지 않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깊은 사랑과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력으로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는 모습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지만 동시에 우리는 국가와 사회에 외쳐야 한다. 여전히 이렇게 돌봄 공백이 많다는 현실과 보다 촘촘한 돌봄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더 이상 눈 감지 말라고 말이다.

이런 가족에게 부여되는 상의 명칭이 한 개인의 헌신적인 모습을 부각하는 `효부상'이 아니라 `위대한 가족상'으로 명명되면 좋겠다. `효부'가 며느리 한 사람의 행동과 삶에 대한 칭송이라면 가족상은 그 가족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으니 우리는 그 가족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가족은 한 사람의 관대함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한없는 믿음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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