뱉는다고 다 말인 건가
뱉는다고 다 말인 건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2.11.20 18: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이 정권의 압력으로 기업 광고를 싣지 못한 사실이 있는데 마치 역사의 시계가 48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그제 기자협회가 발표한 성명에 등장한 말이다.

“기업들이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악의적 보도, 의도적 비난으로 뉴스를 채워온 MBC 광고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의 발언에 항의하며 낸 성명의 한 구절이다.

여기 언급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태는 1974년 벌어졌다. 언론사마다 기관원을 배치하고 편집을 일일이 통제하던 유신 정권에 항의한 동아일보 기자들이 그해 10월 자유언론수호대회를 열고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기관원 출입과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재야와 야당 인사들의 행적을 독자적으로 보도하는 등 신문의 논조가 달라지자 정권이 꺼내든 칼이 신문사의 밥줄을 끊는 것이었다. 중앙정보부가 공작의 일선에 서서 동아일보 광고주들을 협박·회유해 광고를 중단토록 했다.

하나 둘 광고주들이 발을 빼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해 12월부터는 광고 지면이 모두 백지 상태인 신문이 발간되기 시작했다. 이후 정권의 부당한 언론탄압에 반발한 시민들이 기자들을 격려하는 쪽지광고들로 광고란을 채워줬지만 수입원을 잃은 경영진은 버티지 못했다. 이듬해부터 경영난을 빙자한 강성 기자들의 해고가 이어졌고, 여기에 항의하던 기자들이 회사가 동원한 폭력단에 의해 강제 퇴출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시 신문은 시시콜콜 정권의 지시를 받던 과거로 회귀했다.

기자협회는 48년전에 벌어진 이 일을 들어 김 의원의 발언을 시계추를 군사정권으로 돌리겠다는 시대착오적 망언으로 규탄한 것이다. 당시 정권은 언론사 목줄 조이기 작전이 목적을 달성했다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통제권을 벗어나려던 언론을 다시 수중에 넣고 눈엣가시 같던 기자들의 생업을 빼앗아 쓰라린 대가를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겁박해 언론에 재갈을 물린 이 전무후무한 사건은 세계 정치사는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력에도 큰 오점으로 남아있다.

기자협회는 김 의원의 발언을 과거 군사정권의 광고탄압에 비유했지만, 그 당시 여권에서 이런 공공연한 선동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어 본 바 없다. 중정이 기업을 은밀히 접촉하면서 일을 꾸며 수면으로는 공작의 실체가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수십 년간 MBC 메인뉴스에 시보 광고를 몰아주고 주요 프로그램에 광고비를 대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삼성을 직격했다. 여론의 눈치를 살폈던 그때와 달리 33만의 여론을 앞세웠다. “MBC 광고 기업의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한 사람이 33만명이 넘었다”며 “이분들은 국민 기업인 삼성 등이 MBC 광고를 즉각 중단해야 하고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역설한다”고 주장했다.

당의 비상대책위원이 위원회에서 한 공식 발언이지만 당론과는 무관한 사견일 터이고, 그렇게 믿고싶다. 하지만 언론사의 주요 광고주인 대기업들은 김 의원의 말을 개인적 소신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다. 특히 MBC 유착기업으로 지목된 삼성은 집권당 비대위원이 부여한 `의무'를 놓고 고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가짜 뉴스로 국익을 저해한 악성 언론'으로 MBC를 단정한 후 나온 당내 발언이니 더욱 그러할 터이다.

김 의원의 발언 자체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건 소속 의원이 이런 퇴행적 주장을 서슴없이 드러내도 미동없이 넘어가는 집권 여당의 현재다.

기업에 무한자유를 주자는 자유시장경제를 신주처럼 떠받드는 정당의 비대위원이 기업의 중요한 경영전략 중 하나인 광고 업무에 노골적으로 개입해 기업에 고민을 안기는 자가당착도 당으로서는 돌아볼 일이다. 명백한 당의 입장을 밝혀 김 의원의 발언을 정권의 메시지로 오해하고 전전긍긍할지도 모를 기업들부터 안심시키기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