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화문(口是禍門)
구시화문(口是禍門)
  • 이재경 기자
  • 승인 2022.09.0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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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이재경 국장(천안주재)

 

馮道(풍도·882~954). 중국 하북성 헌현(獻縣) 출신의 정치가다.

당나라 말기에 태어나 오대십국시대까지 73세를 살면서 장수한 그는 벼슬 운이 너무 좋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기록의 보유자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후세 사람들이 오뚝이를 일컫는 `부도옹(不倒翁)'으로 불렀을까.

이렇다할 배경 없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문학적 재능이 출중했다. 하지만 내세우지 않았다.

30대에 당 말기 연나라 황제 유수광의 밑에서 관직을 시작한 그는 유수광이 참살당하자 곧바로 새 집권세력에 의탁해 벼슬길을 이어갔다. 타고난 처세술 덕분이었다.

41세이던 923년 후당의 장종 황제가 즉위하자 한림학사로 임명됐으며 4년 후인 927년 명종 때 드디어 재상으로 발탁됐다. 이후부터 다섯 왕조(후당·후진·요·후한·후주) 11천자(天子)를 섬기며 30년 동안 고관을 지냈고 재상을 지낸 것만도 20년 이상이었다.

왕조가 바뀔때마다 현실 정치를 펼쳐 새 왕조를 옹호했는데 이를 두고 지조 없는 정치가라는 비난도 받았다. 하지만 풍도는 자신의 저서 `장락로자서(長樂老自敍)'에서 자신은 황제를 섬긴 것이 아니라 나라를 섬겼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에겐 `입이 화근의 문'이라는 뜻의 `구시화문(口是禍門)'이라는 고사성어의 `원작자'로도 유명하다.

풍도는 5언 절구의 한시(漢詩)인 설시(舌詩)를 남겼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安身處處(안신처처뢰).

입은 화근의 문이요,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라.

입을 다물고 혀를 깊이 간직하면,

몸이 어느 곳에 있든지 편안하리라.

조선조 폭군의 대명사인 연산군은 엉뚱하게도 구시화문이란 성어를 신하들의 입을 틀어막는 용도로 썼다. 이른바 그 유명한 신언패(愼言牌)다. 갑자사화와 무오사화로 수 많은 신하를 끔찍하게 처결한 연산군은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이 궁궐에서 나돌자 갑자기 신하들에게 풍도의 설시 5언 절구를 새겨넣은 목패를 신하들에게 목에 걸고 다니게 했다. 한마디로 `화근의 문인 입과 혀를 잘못 놀리면 죽이겠다'는 경고였다. `말을 신중히 하고 행동을 올바르게 하여 세상의 모범이 되라'는 취지로 `구시화문'의 시구를 떠올린 풍도가 알면 기절초풍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갑자기 부산해졌다. 대선후보 때 국감장에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데 만약 검찰이 기소 후 벌금 100만원 이상의 유죄가 확정되면 공직선거법에 따라 대선 때 국가에서 보전받은 선거비용 434억원을 토해내야 할 처지다. 민주당으로로는 300억원짜리 여의도 당사를 팔아도 감당할 수 없는 큰 액수다.

이 대표는 지난해 10월 경기도 국감장에서 `국토부가 (자신이 성남시장이던 때에) 성남시의 직무유기를 문제삼겠다고 협박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가 허위사실공표죄로 고발됐다. 당시 국토부 노조도 유감을 표명하고 이 대표의 사과를 요구했다.

현재 경찰은 10개월간의 수사 끝에 `이 대표의 당시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며 사건을 검찰에 기소 의견을 달아 송치한 상황. 기소 여부를 떠나 말실수(?)로 설화(說禍)를 자초한 당 대표의 모양새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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