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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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자 수필가
  • 승인 2022.03.31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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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영자 수필가
박영자 수필가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900냥이라니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막상 입이 없다면 우선 먹을 수가 없으니 생명과 직결되어 이 또한 눈 못지않게 중요하다.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다는 면에서 어쩌면 입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코가 막히거나 제 기능을 못하면 급한 대로 입으로 숨을 쉬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입은 말을 하는 기능, 즉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 기능이다. 말은 사람의 생각을 목구멍을 통하여 조직적으로 내는 소리다. 사람의 한평생에서 목숨을 지키는데 공기와 음식을 빼놓고 말 만큼 중요한 것도, 말 만큼 사람과 밀착 되어 있는 것도 없지 싶다.

나는 내 반평생에 가까운 38년 6개월을 초등 교직에 종사했다. 아이들에게 말로써 지식을 가르치고, 말로서 인성을 기르는 그야말로 말잔치의 하루하루였으니 내 입이야 말로 고달프게 살아왔다. 퇴직을 하고도 다시 가르치는 일을 했고, 나중에는 어른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하다가 76세에 일을 접었다.

80년대 모 학교에 근무 할 때는 내 반 아이들이 80명이나 되어 교실이 포화 상태라 날마다 전쟁을 치루 듯 숨 가쁜 나날이었다. 맨 뒤에 앉은 아이들 둘이 수업시간에 장난을 쳐서 그러지 말라고 타이르는데도 그 때 잠깐일 뿐 도무지 집중을 안 하기에 그 아이 둘을 한 대 쥐어박고 싶어도 책상과 책상 사이에 길이 없어 할 수 없이 앞문으로 나가서 복도를 지나 뒷문을 열고 들어가서 두 놈의 귀를 잡고 앞으로 데려다 무릎을 꿇리는 지경이니 얼마나 열악한 교육 환경이었던가. 그런 환경 속에서는 아이들도 교사도 한없이 메마르고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으니 얼마나 많은 말로 죄를 지었을까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편으로는 열악함을 참아내며 어떻게 교직생활을 이어왔었는지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요즈음처럼 말이 난무 하는 시대가 일찍이 없었지 싶다. 특히 정치권의 말 말 말은 도를 넘었다. “자세 똑바로 하세요.” 이것은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자세를 바로 잡아 주겠다고 수없이 되뇌던 말이다. 그런데 어느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자기보다 나이도 더 많고 지위도 높은 사람을 향하여 작심한 듯 고압적으로 소리치면서 한 말이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어이가 없어 망연자실 하는 모습이었다. 그 어이없는 말을 들은 사람은 지금 대통령에 당선 되어 곧 취임을 앞두고 있다. 똑바로 앉으라고 소리친 사람은 대통령을 모셔야 할 처지에 있다. 그는 왜 그렇게 오만방자하게 고압적으로 굴었을까? 더구나 둘 사이는 연수원 동기생이라고 하니, 자기의 뒷배를 믿고, 상대의 기를 죽이고 제압하려는 것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그렇게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 처지에서 그들 가슴 속에는 어떤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까. 섬뜩한 생각이 든다. 어떤 경우에도 오만은 안 되며 상대를 밟고 넘어가려는 질 나쁜 야심은 용납이 안 된다.

어느 잘난(?) 한 여자는 여자로서는 오르기 어려운 높은 장관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이며, 검찰 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 또한 오만의 극치를 달렸다.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공개석상에서 서릿발 같은 어조로 책상을 탁탁 치며

“장관의 <말을 <겸허히 <들으면 <좋게 <지나 갈 <것을 <새삼 <지휘랍시고 <해 <가지고 <일 <더 <꼬이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강한 어조로 애 나무라듯 했다. 상대방은 “검찰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로   맞받아쳤으니 분위기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태가 되었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이 무지렁이의 눈에도 저 볼썽사나운 꼴을 어찌해야 할까 싶었다. 말은 한 번 쏟아 놓으면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 상대방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는 결과가 되었고 이제 자기편으로부터도 역적 소리까지 듣게 되었으니 그녀의 정치 생명은 어찌 되는 걸까. 더구나 그녀의 이력을 보니 2015년 `국회를 빛낸 바른 언어상'을 수상했으며, 2000년에는 <국민화합운동연합>이 주는 `국민화합상`을 수상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여자로서, 나이가 더 많은 입장에서 “조금만 겸손하시지…” 하는 연민의 정을 느낀다.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서재에 `살면서 우리가 많이 해야 할 말'을 써 붙여 놓고 자주 입에 올리며 입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힘을 내셔요> <걱정하지 마셔요> <용기를 잃지 마셔요> <용서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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