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별일 없어 고마워요
그대가 별일 없어 고마워요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1.08.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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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모진 계절을 건너고 있다. 된더위와 역병의 한복판에 갇혀 길은 희미해지고 말라가는 대지처럼 사람도 생기를 잃어 간다.

수시로 들어오는 문자 속에 온열 질환을 조심하라는 당부를 무시했다. 농사를 짓거나 땡볕 아래 장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더위 먹을 일이 있겠나 싶었다. 악에 받친 듯 쉽사리 꺾이지 않는 더위에 오히려 사람이 꺾이고 나니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둘째 동생이 전원주택을 짓고 싶다며 터를 보러 가자고 했다. 오랫동안 염원했던 일이란 걸 알기에 반가웠다. 한낮이었지만 개의치 않고 어떻게 집을 지으면 좋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느라 사십 여분을 땡볕에서 서성였다. 좋은 일이라 더운 줄도 몰랐다.

사단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났다. 심한 어지럼증과 무력감, 구토증세가 나타났다. 왜 그런지 감을 잡지 못했다.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는데도 숨이 차서 짧게 끊어야 했다. 처음 겪는 일이다. 식구들은 코로나 검사를 하자며 거리를 둔다. 몹시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어지럼증이 심해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지자 생각만 잡풀처럼 자라기 시작했다. 이러다 세상을 떠난다면 덥다는 핑계로 정리되지 않은 집안 살림은 어찌할 것이며 가족들과 내 마음속에 들였던 이들과의 이별을 어찌할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 내가 있던 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질 것이지만 그래도 그중 제일 걸리는 사람은 내년 이른 봄에 출산을 앞둔 작은 딸이었다. 요즘 입덧으로 아침마다 친정으로 와서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견디는데 아이 낳을 때 엄마가 없으면 얼마나 서러울까를 생각하니 덩달아 서러워서 눈물이 쏟아졌다.

사흘이 지나면서 온열증상이 사라지고 입맛이 돌아왔다. 혼자 마음속으로 서럽게 쓰던 눈물의 자서전도 싱겁게 끝났다. 멋쩍다. 역병이 아니어서 한숨을 돌리는데 문우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외가 함께 자가격리 중이란다. 이 주 동안 집안에서만 있어야 해서 몹시 불편하다고 하소연한다.

그날 저녁, 집안 아주머니가 땡볕에서 참깨를 베다 쓰러졌다는 소식이 왔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회복이 덜 되었다며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누구나 죽음의 어둠이 밀려오면 삶을 돌아본다. 맺힌 것들을 후회하고 헌신과 배려가 부족했음에 슬픔이 고봉으로 내려앉는다. 문학계에서 존경받는 어느 원로문인께서는 죽음의 문 앞에 서고 보니 어릴 적 작은 참새를 잡아먹었던 일조차 몹시 후회된다고 하셨다.

사흘 동안 아파 보니 알겠다. 후회스러운 일이 그렇게 많은 줄 몰랐다.

무더위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요즘, 친지와 지인, 문우들의 안부가 걱정스럽다. 어쩌다 전화통화가 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자유롭던 지난날의 향기가 허공을 메우는 날들 속에서도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 하면 그리 고마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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