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21.08.0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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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삶은 매번 서툴다. 아직도 선택의 고리로 이어진 여정이 녹록지가 않다. 언제나 기로에 서면 지칫거린다. 살면 살수록 어려워지는 건 두 갈래 길에 맞닥뜨리는 일이다. 무엇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여유로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코앞에 와서야 선택해야만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앞으로 어떤 발칙함이 기다릴지 모르는 선택은 그래서 걱정과 기대가 함께한다. 가 보아야 아는, 살아 보아야 알 수 있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선택되지 않은 다른 길에 누구나 미련을 갖고 산다. 만약에 그 길을 택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담고 산다. 환상의 나래가 거침없이 “만약에”라는 말을 앞세운다. 상상 속의 세계는 거센 비바람도, 폭풍우도 없는 맑은 날씨다. 거기에 아름답고 눈부신 풍경을 펼쳐 놓는다.

라라랜드는 “만약에”가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오는 영화다. 마지막 장면의 먹먹함에 누구라도 해 보았을 생각이 아닐까 싶다. 영화 속의 상상대로 뜨겁게 키스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헤어지지 않았다면 결혼해서 행복할 수 있었을까. 마음에 남긴 긴 여운만큼이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짙은 아픔으로 남는다.

이 영화는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세바스찬과 배우 지망생인 미아가 만나면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서로 꿈을 응원해주면서 키워가던 사랑은 어느 순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가 재즈피아니스트로 성공하여 소원해지면서 자연히 둘의 관계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별 후 미아도 유명한 배우가 되어 결혼을 해 딸을 두고 있다. 운명의 장난인가. 우연히 남편과 그의 재즈클럽에 들르게 된다. 서로를 알아보고 그는 두 사람이 좋아했던 노래를 연주한다. 그녀의 촉촉해진 눈을 한동안 조명한다. 이때 화면은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으로 가득하다.

그녀를 와락 껴안고 키스를 하자 상상이 펼쳐진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미고 육아를 함께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어쩌면 가족으로 살았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장면도 잠시, 연주가 멈추고 곧 현실로 돌아온다. 두 사람의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 세바스찬의 연주는 마지막 음을 맺지 못한 채 끝이 난다.

연주를 마치자 남편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는 미아. 문을 나서기 전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의 눈빛이 오간다. 그 속엔 수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어 보인다. 두 사람의 표정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담담하게 참아내는, 절제된 감정들이 이 영화의 한 수다. 그녀가 돌아서자 혼잣말처럼 들리는 소리. 하나, 둘, 셋, 넷. 다시 건반을 두들기는 그다. 피아노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서 끝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간다.

지금 사는 인생은 전에 내가 선택한 결과다. 가보지 않은 길은 아쉽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사람은 지나간 시간, 지나간 인연들을 생각하며 “만약에”를 소환한다. 더 나을 거라는 기대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어떤 것을 선택했더라도 늘 후회는 남는 법이다.

의미 없지만 붙잡고 싶은 말. 있을지도 모르는 일로 상상 속의 나를 과거로 되돌려 놓는 소모적인 말. 또 자신의 부족을 감추고 나약함을 외면하고 싶을 때 쓰는 말. “만약에”라는 부사어다. 아무리 되돌려 보아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슬픈 말이다.

지금껏 걸어온 길이 고달팠다 해도 오지 않을 수 없던 길이다. 그 길들을 지나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궁금하고 좋을 거라는 환상은 미련과 호기심만 남을 뿐, 내가 걷는 여기가 나의 길이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은 길이 아님을. 내 안에 떠돌던 바람 한 점이 허허로이 구름을 몰고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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