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로부터 듣다
강물로부터 듣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1.05.3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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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바위에 앉아 강물처럼 흐르는 무논을 본다. 지난해도 이 자리에서 똑같은 광경을 보았지만

그때와 지금 바라보는 심경이 다르다. 물론 만물은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 사상과는 본질적 의미가 다른 관조이다. 얼마 전 책장을 덮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여운이 아직도 내면에 자리한 탓이다. 싯다르타는 석가모니가 출가하기 전 태자 때의 이름인 고타마 싯다르타와는 다른 동명이인이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어느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개인 내면을 탐구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성찰로서의 신앙을 띤다. 깨달음의 순간에 체험한 것을 말이나 가르침을 통하여 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기 자신의 가장 내면적인 곳까지 뚫고 들어가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탐구하고자 한 주인공 싯다르타, 말년에 스스로 뱃사공이 되어 강물 위를 오가는 삶을 살면서 강물을 통해 풀어내는 심오한 진리들을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이 많다.

긴 순례의 인생 뒤안길에서 만난 뱃사공 바수데바로부터 `남의 말을 귀담아듣는 것을 나에게 가르쳐준 것은 강이었고 강물로부터 아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 가라앉는 것, 깊이를 추구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는 말을 듣고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는 그처럼 뱃사공이 되어 강물이 들려주는 경전을 듣는다.

1922년에 소설 《싯다르타》를 완성한 독일 출신 헤르만 헤세는 목사인 아버지와 신학자 집안의 어머니 사이에서 성장한 사람이다. 소설을 통해 실제로도 삶 가운데 내면의 영적 갈등이 많았음을 직감한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오늘날도 이따금 종교 문제로 갈등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종교의 본질이 많이 왜곡된 까닭이다. 모든 종교의 본질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종교가 이현령비현령으로 자본의 속성과 맞물려 그 상업적 속성을 띠게 될 때는 답이 없다. 예수나 석가모니 모두 스스로 낮은 자리를 선택한 성자들이며 물질과는 거리가 먼 지존들이다. 이따금 사회가 혼란한 시기에 종교가 위안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악처럼 떠오를 때면 신앙인으로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는다. 향기가 없는 꽃은 나비나 꿀벌이 모여들지 않는다. 교리만 있고 사랑이 없는 종교는 향기 없는 꽃이나 다름없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보다 녹음 짙은 자연에서 혼자 사색하거나 조용히 책 읽는 버릇이 생겼다. 들녘 한가운데 농막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강물처럼 흐르는 무논에서 자연이 일깨우는 진리를 읽는다. 넉넉히 품어주는 자연에서 사유할 때 더 내면으로 깊어지고 평온함을 느낀다.

바람이 한차례 빗질하고 가자 주름처럼 잘 접힌 물살의 표면이 두 눈으로 옮겨와 긴 파문을 일으킨다. 잔잔히 일렁이는 물결을 오랫동안 보노라니 세속과 탈속의 경계가 거기 있다. 낮아야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어서 온 생명을 품는 물의 속성처럼 어느 때에 이르러 그렇듯 넉넉할 수 있을지 털어내야 할 세속의 먼지가 두껍다.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되면서 하늘도 넉넉히 품고 바람에도 흔들릴 줄 아는 물은 그대로 경전이다.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또 흐르며, 끊임없이 흐르지만,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며,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동일한 것이면서도 매순간 새롭다는 의미를 되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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