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골프장의 배신
퍼블릭 골프장의 배신
  • 이형모 선임기자
  • 승인 2021.05.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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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이형모 선임기자
이형모 선임기자

 

작년 11월 골프장의 그린피 인상이 청와대 국민청원에 등장한 적이 있다. 코로나19를 틈타 골프장 사용료를 비정상적으로 올리는 행태의 개선을 촉구하는 내용이었고 동참 댓글도 빗발쳤다. 청원인이 지적한 것은 지나친 그린피 인상, 외제 슈퍼카 렌트비와 맞먹는 카트 사용료, 현금으로만 계산, 캐디피 인상, 골프장 내 식음료의 비싼 가격이었다. 골프장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삐 풀린 사용료 인상은 멈추지 않았고 현재도 계속 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누려왔음에도 시장 논리만 앞세워 이용자 부담을 키우고 있는 대중제 골프장의 횡포에 골퍼들의 반감이 쌓이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0년부터 골프 대중화를 이유로 대중제 골프장에 대해 회원제 골프장에 부과되는 12%의 취득세를 4%로 깎아 주고 있다. 재산세는 10분의 1, 취득세는 3분의 1만 부과한다. 골프장 이용객들이 내야 할 개별 소비세·교육세·농어촌특별세는 전액 감면해주고 있다. 지난해 대중제 골프장에서 감면받은 세금만도 9000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세금 혜택과 코로나19 장기화 덕에 국내 골프장들은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가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국내 골프장의 감사보고서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국내 골프장의 지난해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이 31.6%를 기록해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세금 감면 혜택을 받는 대중제 골프장 영업이익률은 무려 40.4%에 달했다. 국내 상장기업 평균 이익률의 8배나 높은 수치다.

이런 각종 혜택을 누리기 위해 최근 회원제 골프장들이 대중제로 속속 전환하고 있다. 2015년 기준 대중제 265개, 회원제 219개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난해 기준 대중제는 344개로 대폭 늘어난 반면 회원제는 158개로 줄었다. 대중제 골프장이 늘어나면서 골퍼들의 기대는 컸다. 회원제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쉽게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기대는 배신감으로 변했다. 영업이 잘되자 대중제 골프장들이 그린피와 카트비, 캐디피를 줄줄이 올리면서 이용료가 회원제 골프장 턱밑까지 따라왔다. 국내 골프장의 그린피는 이미 일본의 2배를 넘어섰다. 카트 대여료와 캐디피까지 포함하면 골퍼 1인당 골프장 이용료가 일본의 3배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요즘 골퍼들 사이에선 골프장의 횡포를 빗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들을 하고 있다. 2016년 경영악화로 회생을 신청한 골프장이 80여개에 달한 적이 있었다. 1990년대에 골프장이 2400여개에 달할 정도로 포화상태가 되면서 줄도산한 일본 골프산업을 닮아갔다.

코로나19 특수로 골프장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골퍼들의 원성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 귀하신 몸이 된 골프장들이 `잇속 챙기기'와 `갑질 횡포', `배짱 영업'을 일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언제 전세가 역전될지 모를 일이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끝나고 해외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값싼 해외로 나가려는 골퍼들은 다시 늘어날 것이다. 골퍼들이 골프장을 골라 다니는 시절이 다시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국내 골프장들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정부가 골프 대중화 차원에서 이용객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중제 골프장에 준 게 세제 혜택이다. 세금 혜택을 받는 만큼 골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골프 인구가 늘어나고 골프장도 살아갈 수 있다. `물 들어올 때 노저어야 한다'는 심보를 버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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