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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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경 기자
  • 승인 2007.06.1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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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연 회장과 쟈크
이재경 편집국부장(천안)

한 때 암흑가에서 어두운 삶을 살았던 40대의 프랑스의 재벌 사업가 쟈크.

부와 명성을 쌓고 행복하게 사는 그의 인생에 돌연 소용돌이가 몰아친다.

전처 소생의 하나뿐인 청년기 아들 에디가 마약에 절은 생활을 하다 환각상태에서 경찰관을 살해하고 감옥에 들어간다.

아들과 떨어져 살던 쟈크는 소식을 듣곤 가슴속에 본능적으로 살아있던 부성에 놀라며 미친 듯 아들 살리기에 나선다.

엄청난 돈을 들여 베테랑 변호사를 선임하고 아들의 범행이 우발적이었음을 내세워 법정을 사로 잡는데 성공했다고 판단한 즈음, 공판을 앞두고 언론은 그가 젊은 시절에 암흑가 생활을 하고 은행강도로 복역했던 과거를 폭로한다. 일이 갑자기 뒤틀린다. 며칠 앞둔 재판에서 아들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불가피해진 상황.

쟈크는 암흑가로 되돌아가 옛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갱단과 함께 호송차를 습격, 총격전끝에 아들을 구출해 낸 그는 부와 명예,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국경을 향한다.

눈 덮힌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에 가면 아들을 살릴 수 있다. 천신만고 끝에 국경앞 100m까지 온 부자. 그러나 헬기까지 타고 추격에 나선 경찰은 끝내 부자를 찾아낸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필사적으로 뛰는 쟈크. 몇 발자국만 더 가면 되는데, 헬기에서 총탄 세례가 퍼부어진다.

부자가 맞잡은 손이 힘없이 떨어지면서 화면은 멈추고, 엔딩….

1976년, 프랑스의 호세 지오반니 감독이 연출하고 명배우 알랑 드롱이 출연했던 '부메랑'의 내용이다.

지난 달 인터넷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부성애를 가슴 벅차게 느낄 수 있는 명작'중 하나로 추천된 이 영화는 탄탄한 극본과 연기, 연출력으로 세계적 히트를 쳤으며 지금도 40대 이상 매니아들에겐 감동이 생생하다.

31년 후 2007년 3월 8일, 한국에서 이 영화처럼 진한 부성애를 엿볼 수 있는 실제 상황이 연출됐다.

5일 검찰이 발표한 한화 김승연 회장의 차남 관련 폭행사건의 기소 내용을 보면, 이건 실제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그 부성애가 쟈크와 견주어 그 깊이가 더하면 더했지 다르지 않다.

억울하게 폭행을 당한 아들을 위해 암흑가의 사람들을 동원했다. 자크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위해 억대의 돈을 아끼지 않고 조폭에 줬다. 쇠파이프와 전기충격기를 들고 직접 행동에 나섰다.

법정에서 진위가 밝혀지겠지만, 기소내용이 사실이라면 그의 부성애 역시 눈물겹다. 사건 발생후 세계 유수의 언론들이 재벌 아버지의 '애절한 부성애'를 긴급뉴스로 타전한 것도 그래서인가.

4월 25일 이 사실이 첫 보도된 후 한화그룹은 계열사의 주가가 추락하는 불똥을 맞으며 예하 각 사가 비상체제에 들어가 있다. 임원들이 집무 중 웃는 것도 '금기'로 할 정도로 사내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열흘 후인 5월 14일, 스승의 날을 맞은 충남 천안의 한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노고에 진정 뜻 그대로의 '촌지'를 감사히 전하려는 학부모들을 학교측이 말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분위기가 좋지않아 그냥 조용히 보냈으면 합니다.", "이사장께서 그런 상황인데 우리라도 자숙해야죠."

김 회장의 선친이 설립하고 지금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이 학교는 그래서, 한화 계열사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학교들과는 전혀 다른 숙연한 분위기에서 스승의 날을 보냈다.

학교 홈피에 들어가면 김 회장이 학생들에게 전하는 '이사장 5대 덕목'이 강조돼 있다.

그 첫째가 올바른 심성, 둘째가 감사하는 마음, 셋째가 거시적 안목, 다음이 예의 바름, 마지막이 공부하는 인간….

빚나간 부성애로 지금 영어의 몸이 돼있는 김 회장의 본디 심성이 이같으리라 믿고싶다.

설마 학생들에게 거짓말을 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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